올해 SSG에 입단한 새 외국인 투수 이반 노바(35)는 KBO리그 역사에서도 손에 꼽힐 만한 경력을 자랑한다. 메이저리그를 조금 관심 있게 본 팬들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이름이다. 이런 외국인은 흔하지 않다.
당장 메이저리그에서 11년을 뛰며 통산 90승을 거뒀다. 메이저리그에서 선발로만 227경기에 나갔다. 당장 현역 선수 중 KBO리그에서 선발로 227경기 이상에 뛴 선수가 10명도 채 안 된다. 전성기에서 내려온 선수임은 분명했지만, 땅볼을 유도할 수 있으며 제구가 안정적이고 또 이닝소화능력이 있다는 평가 속에 영입했다. 특급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닝은 먹어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노바의 시즌 출발은 불안불안하다. SSG의 예상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벌어진 탓이다. SSG는 노바의 구속이 예전만은 못할 것이라 봤다. 다만 투심(싱커)의 움직임과 제구가 좋아 시속 140㎞대 중반의 구속만 꾸준히 유지해도 땅볼 유도가 가능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구속은 기대 이상이다. 1~2년 전보다 더 빨라졌다. 하지만 오히려 제구가 기대 이하다.
시즌 9경기에서 53⅓이닝을 소화하는 등 이닝소화는 나쁘지 않지만, 평균자책점이 5점대(5.06)인 이상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노바 또한 이런 문제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는 후문이다. 전력분석팀과 꾸준히 미팅을 하고, 코칭스태프의 의견도 상당 부분 수용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지만 여전히 기복이 심했다. 17일 잠실 두산전에서는 넉넉한 득점 지원을 받고도 한순간에 흔들리며 5⅓이닝 5실점으로 부진, 대역전패의 단초를 제공했다.
제구가 문제였다. 김원형 SSG 감독은 스트라이크와 볼의 편차가 크다는 점을 우려했다. 실제 노바는 제구가 괜찮은 날은 무수한 땅볼을 유도하며 이닝을 쉽게 먹어치우는 선수다. 그런데 그 제구가 일관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다. 우타자 몸쪽으로 향하는 투심패스트볼의 제구가 들쭉날쭉하고, 체인지업이나 커브 등 떨어지는 변화구가 가운데 몰리는 경우도 잦았다. 덤비지 않는다면 타자들은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았다.
더 이상 흔들리면 이제는 교체 검토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 하지만 노바는 22일 인천 LG전에서 혼신의 역투로 팀 역전승의 발판을 놨다. 2회 1점을 허용하기는 했지만 3회부터 7회까지 추가 실점을 막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7이닝 동안 4피안타 2탈삼진 1실점의 투구로 직전 경기 부진에서 벗어났다. 4사구를 4개 내주기는 했지만 위기관리능력도 뛰어났다.
절실하게 경기에 매달린 노바는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고는 크게 포효하며 팬들의 눈길을 사로잡기도 했다. 0-1로 뒤진 7회 2사 1,2루에서 박해민을 1루수 땅볼로 유도했다. 1루수 크론이 잘 잡아 베이스커버에 들어가던 노바에게 토스했고, 노바는 1루를 밟는 순간 5초가량 호랑이처럼 포효했다. 경기 후 한 동료 선수는 "생각보다 오래 포효를 해서 우리도 놀랐다. 들어와서도 한동안 기뻐하더라"고 웃었다.
메이저리그에서 워크에식에서 문제를 드러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어떤 상황에서도 크게 흥분하지 않는 성품을 가진 노바였다. 그랬던 노바가 평소 보기 어려웠던 모습을 보여준 것은 그만큼 성공에 목말라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이날은 가족이 관중석에서 자신의 투구를 지켜봐 좋은 경기를 하고 싶은 욕심이 더 강했을 것이다. 목표 앞에 메이저리그 90승 투수의 체면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팀 동료인 윌머 폰트처럼 구위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나이는 이미 지났다. 하지만 22일 경기 정도의 제구만 유지할 수 있다면, 또 쉽게 무너질 만한 투수도 아니다. 땅볼/뜬공 비율(1.23)이 좋은 편이고, 기본적으로 피장타율은 낮은 편으로 인천SSG랜더스필드와 상성도 이론적으로 잘 맞는다. 노바는 더 이상 메이저리그 90승의 경력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살아남아야 할 한 명의 외국인 선수일 뿐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5월 평균자책점은 3.55로, 4월(6.43)보다 훨씬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