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이.”
한국 청소년야구대표팀의 6-3 리드. 9회말 2사 1,2루. 아웃카운트 1개만 추가하면 ‘레전드 군단’ 몬스터즈를 잡는다. 마운드에는 KIA 예비 신인 윤영철. 그러나 타석엔 몬스터즈 감독 겸 선수이자 한국야구의 레전드 오브 레전드 이승엽.
청소년대표팀 최재호 감독은 2사 2루서 정성훈을 고의사구로 1루에 보냈다. 서울고척스카이돔을 채운 팬들에게 대기타석에서 준비하던 이승엽의 타격을 보여주게 하려는 의도였다. 방송의 묘미(?)도 알고 있었다. 한편으로 윤영철에 대한 믿음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극적인 순간, 한국야구 레전드와 미래가 제대로 붙었다. 그에 앞서 최재호 감독은 마운드에 올라 “영철이 하고 싶은대로 해”라고 했다. 포수 김동헌(키움 예비 신인)도 정면 승부를 하자고 다짐했다.
이때 윤영철은 김동헌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오케이.” 윤영철은 타석에 들어선 이승엽에게 90도로 인사하며 예의를 표한 뒤 투구동작에 들어갔다. 미소를 잃지 않은 채. 그리고 초구에 1루수 파울플라이로 돌려세우며 경기를 끝냈다. 이승엽은 씁쓸하게 돌아서며 “세월이 야속하다”라고 했다. 지난 3일 방영된 JTBC 예능프로그램 최강야구다.
윤영철은 최강야구가 낳은 예비 스타다. 충암고 에이스, 청소년대표팀 핵심투수로서 세 차례나 몬스터즈 레전드 타자들을 괴롭혔다. 고교생 수준을 넘어선 커맨드와 경기운영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를 지명한 KIA는 물론 프로 관계자들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지만, 야구 팬들에게 윤영철이란 이름 석자를 확실하게 각인시킨, 결정적인 경기들이었다.사실 윤영철이 정말 놀라운 건 마운드에서의 여유다. 어떤 상황서도 침착하게 자신의 경쟁력을 발휘한다. 8회 2사에 올라와 류현인(KT 예비신인)을 사구로 내보냈다. 9회에도 선두타자 김문호에게 기습적인 3루 방면 번트안타를 내주는 등 흔들릴 여지가 다분했다.
그러나 윤영철은 매 순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최 감독으로부터 공을 받은 순간부터 어떤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도, 어떤 결과가 나와도 그랬다. 그리고 최 감독의 의도대로 경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흔들릴지언정 무너지지 않았다.
윤영철이라고 해서 왜 실점하지 않고 무너지지 않을까. 하지만, 어떤 상황이든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는 투수라는 게 증명됐다. 그 미소는, 누가 가르쳐준다고 해서, 시킨다고 해서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윤영철 특유의 평정심을 유지하는 도구이자, 승부사 기질의 원천이다.
KIA는 그런 윤영철에게 계약금 3억2000만원에 연봉 3000만원을 주기로 했다. 3억5000만원이 하나도 아깝지 않다. 윤영철은 2023시즌부터 KIA 유니폼을 입고 광주KIA챔피언스필드 마운드에 오른다. 곧바로 1군 주요투수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보직 교통정리는 김종국 감독의 몫이다. KIA 팬들은 내년부터 윤영철의 미소를 편안하게 직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