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리그에서 가장 큰 기대를 모았지만, 그만큼 실망도 큰 팀이 바로 김하성(28)의 소속팀 샌디에이고다. 파격적인 지출로 월드시리즈 우승에 도전하겠다는 야망을 보여줬으나 정작 시즌 개막 두 달이 지난 지금 5할 승률도 못하고 있다.
샌디에이고는 29일(한국시간) 양키스타디움에서 열린 뉴욕 양키스와 경기에서 7-10으로 졌다. 흐름을 만들만 하면 끊기는 양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날도 선발로 나선 에이스 다르빗슈 유가 2⅔이닝 7실점으로 무너지면서 경기를 그르쳤다. 선수들의 타격과 주루에서도 실수들이 계속 나왔다. 샌디에이고는 24승29패(.453)를 기록, 내셔널리그 서부지구 4위에 처져 있다. 지구 선두 다저스와 경기차는 7.5경기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김하성은 분전하고 있다. 화려하지는 않다. 그러나 꾸준하게 활약한다. 29일 양키스전에서도 선발 6번 3루수로 나와 2타수 1안타 2볼넷 3득점 1도루를 기록하며 팀 패배 속에서도 한가닥 위안이 됐다. 더 이상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유틸리티 플레이어'로서의 가치만 인정받는 단계는 지났다.
이날 양키스 선발은 리그에서 가장 많은 돈을 받는 투수(9년 3억2400만 달러)이자, 양키스의 에이스인 게릿 콜(33)이었다. 샌디에이고 타자들이 주눅들 수 있는 이름값과 기량이기는 하지만 김하성은 전혀 그런 것이 없어 보였다. 침착하게 공을 골랐고, 위협적인 상황에서도 끝내 복수를 해내며 동료들의 박수를 받았다.
2회 첫 번째 타석에서는 콜의 바깥쪽 승부에 끌려 나오지 않고 볼넷을 골랐다. 존에 들어온 초구가 볼 판정을 받는 약간의 행운까지 등에 업은 김하성은 3B로 유리한 카운트를 잡았다. 이어 5구째 높은 쪽 패스트볼과 잘 골라내며 걸어 나갔다. 콜은 초구 판정에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는데, 김하성이 그런 콜의 심기를 볼넷으로 더 건드린 셈이 됐다.
빠른 주자라 콜과 양키스 포수 카일 히가시오카의 예민함은 극에 달했다. 콜이 평소 견제를 많이 하는 투수는 아닌데 한 차례 견제가 들어갔다. 히가시오카의 볼 배합도 바깥쪽이었다. 김하성이 뛰면 2루에서 잡겠다는 강한 의지였다. 하지만 그런 의지에도 불구하고 김하성은 뛰어서 2루에 들어갔다. 샌디에이고 현지 중계진은 "사실상 피치아웃이었다"고 할 정도로 바깥쪽 공이었지만 김하성의 발을 막을 수 없었다.두 번째 타석에서는 위협적인 상황도 있었다. 김하성은 여전히 끈질긴 승부를 벌이고 있었다. 그런데 2B-2S에서 8구째 패스트볼(155㎞)이 김하성의 머리를 향했다. 인코스로 들어간 뒤 만약 속지 않으면 바깥쪽 변화구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보였는데, 공이 너무 빠졌다. 김하성이 깜짝 놀라 넘어졌을 정도였다. 헬멧도 벗겨졌다. 고의는 없었겠지만 타자로서는 위협적인 투구였다.
결국 이 타석에서 양키스 배터리의 의도대로 삼진을 당했지만, 5-8로 뒤진 7회 세 번째 타석에서는 콜에 복수했다. 3-8로 시작한 7회 오도어가 홈런을 쳐 2점을 추격한 샌디에이고였고, 김하성은 2S에 몰렸으나 끈질기게 버텼다. 3구 볼을 골랐고, 4구 파울을 쳤고, 5구 볼을 골랐다. 바깥쪽 변화구를 모두 참아냈다. 투수로서는 뜻대로 되지 않는 환경이었다. 결국 6구째 커브가 낮게 떨어지는 것을 김하성이 기술적인 스윙으로 안타를 만들어냈다.
콜은 여기까지였고, 김하성은 '에이스 강판 제조기'의 면모를 선보였다. 김하성은 이날 9회까지 세 차례 출루했는데 모두 득점에 성공하며 팀 추격을 마지막까지 도왔다.
김하성은 사실 타율이 높은 편은 아니다. 이날 5월 들어 처음으로 2할4푼대에 진입했다. 그러나 볼넷을 꾸준하게 골라내며 출루율은 유지하고 있다. 김하성의 5월 OPS(출루율+장타율)는 0.817이다. 이는 5월에만 홈런 7방을 쳐 낸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766)의 OPS보다 더 낫다. 타티스 주니어는 출루율(.291)에서 문제를 드러낸 반면, 김하성의 5월 출루율(.366)은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기 때문이다. 김하성의 가치가 갈수록 공격에서도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