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키=이학철 기자] 2000년 9월 20일. 뉴욕의 팬들을 공황상태에 빠뜨려 버린 초대형 사건이 발생한다. 데뷔 이후 15년간 뉴욕의 유니폼만을 입고 활약하며 '뉴욕의 심장'이라 불리던 패트릭 유잉이 시애틀로 트레이드된 것.
훗날 알려진 바에 따르면 당시 트레이드는 유잉의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어쨌든 유잉이 트레이드 된 시기를 기점으로 뉴욕은 탈출구 없는 추락을 거듭한다. 안타깝게도 뉴욕이 겪고 있는 흑역사는 현재 진행형. 이미 7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티켓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으며 최근 6시즌 동안은 승률이 4할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NBA 최고의 빅마켓으로 손꼽히는 뉴욕에 들이닥친 어둠의 그림자를 재조명해보자.
*본 기사는 루키더바스켓 9월호에 게재됐습니다.
유잉의 유산
2017-18시즌을 앞두고 휴스턴으로 트레이드 된 크리스 폴은 자신이 6년 동안 활약하던 클리퍼스에 무려 8명의 선수를 합류시켰다. 이 중에는 패트릭 베벌리, 루 윌리엄스, 몬테레즐 해럴 등 현재 클리퍼스 로스터의 주축이 된 이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2018-19시즌을 끝으로 친정팀인 뉴올리언스를 떠난 앤써니 데이비스 역시 마찬가지다. 그를 떠나보낸 뉴올리언스는 론조 볼, 브랜든 잉그램, 조쉬 하트 등 레이커스가 자랑하던 유망주 군단을 그대로 품에 안았다. 이들과 함께 '제2의 르브론 제임스'라고 불리는 자이언 윌리엄슨까지 합류한 뉴올리언스는 현재 리그에서 가장 미래가 기대되는 팀으로 손꼽힌다.
그리고 이 남자. 패트릭 유잉. 데뷔와 동시에 평균 20점을 올리며 신인왕을 수상했으며, 이후 올스타에만 11번 선정된 뉴욕 최고의 스타. 뉴욕의 유니폼을 입고 선수 생활을 마무리할 것 같던 그의 충격적인 트레이드 소식이 전해진 것은 2000년 9월 20일의 일이었다.
'뉴욕의 왕, 뉴욕의 심장' 등으로 불리며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활약하던 유잉의 트레이드 소식에 뉴욕의 팬들은 충격을 금할 길이 없었다.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팀 역대 최고의 선수를 떠나보내면서 뉴욕이 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점이다. 무려 4개의 팀과 16명의 선수가 포함된 당시의 트레이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뉴욕 Get : 트래비스 나이트, 글렌 라이스, 룩 롱리, 라자로 보렐, 버논 맥스웰, 블라디미르 스테파니아, 2001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2001년 드래프트 2라운드 지명권, 2002년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
레이커스 Get : 에마뉴얼 데이비스, 그렉 포스터, 호레이스 그랜트, 척 퍼슨
피닉스 Get : 크리스 더들리, 2001년 1라운드 지명권
시애틀 Get : 패트릭 유잉
일단 뭔가 많이 받아 챙기긴 챙겼다. 문제는 실속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그나마 뉴욕에 합류한 선수들 중 이름값이 높았던 선수는 글렌 라이스와 룩 롱리 정도. 그러나 당시 이미 33세로 전성기를 훌쩍 남긴 라이스는 뉴욕에서 1시즌 평균 12.0점의 기록을 남긴 채 휴스턴으로 재차 트레이드 된다. 거기다 팀에는 이미 라트렐 스프리웰, 앨런 휴스턴이라는 존재가 있었던 탓에 라이스는 뉴욕의 유니폼을 입고 치른 대부분의 경기를 벤치에서 출발해야 했다.
시카고 왕조의 주전 센터로 활약했던 롱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미 전성기 기량을 모두 잃은 롱리는 뉴욕에서 25경기 출전해 평균 2.0점의 초라한 기록을 남긴 채 그대로 은퇴했다. 그나마 건진 2장의 1라운드 지명권은 이미 전성기가 지난 마크 잭슨과 백업 센터 수준에 불과했던 오델라 해링턴을 영입하는데 소모했다. 다시 말해 양쪽 무릎의 연골이 모두 닳아도, 아킬레스건 부상을 안고서도 뉴욕의 우승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했던 유잉을 떠나보내며 뉴욕이 남긴 그의 유산은 아무 것도 없다. 그리고 이는 뉴욕이 현재까지 겪고 있는 기나긴 암흑기의 서막과도 같았다.
어둠의 터널에 진입하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했던가. 그러나 이는 적어도 유잉을 떠나보낸 뉴욕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유잉과 함께 13년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동부의 강호로 군림했던 뉴욕은 유잉이 떠난지 2년 만에 3할대 승률(30승 52패)에 머무르는 팀으로 전락한다. 그리고 이러한 뉴욕의 역사적인 몰락을 이끌었던 인물이 지금부터 소개할 스캇 레이든이다.
스캇 레이든. 뉴욕의 역사를 알고 있는 팬이라면 치를 떨 이 인물의 역사적인 행보는 그가 지난 1999-00시즌 개막과 함께 뉴욕의 단장으로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물론 레이든이 부임 첫 시즌부터 팀을 나락에 빠뜨리지는 않았다. 유잉과 함께한 마지막 시즌이었던 1999-00시즌 그는 팀을 50승(32패)으로 이끌었고, 유잉을 떠나보낸 첫 시즌에도 스프리웰, 휴스턴, 라이스 등을 주축으로 48승(34패)을 따내며 플레이오프 티켓을 따낸 뉴욕이다.
그러나 레이든이 본격적으로 '빌런(villain)'의 면모를 드러내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던 유잉 트레이드는 훗날 뉴욕이 겪게 될 재앙의 시작과도 같았다.
레이든의 삽질(?)은 2001-02시즌을 앞두고 맺은 앨런 휴스턴과의 재계약으로 그 정점을 찍었다. 물론 당시 휴스턴은 뉴욕의 간판스타이자 2년 연속 올스타에 선정된 뛰어난 스코어러였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계약 직전 시즌까지 평균 20점 이상을 찍어본 적이 없는 선수였으며, 30대로 접어든 선수였다. 그런 휴스턴에게 레이든은 6년간 무려 1억 달러에 달하는 거액을 선사한다.
휴스턴과의 어마어마한 계약은 현재까지도 회자되는 최악의 계약으로 손꼽힌다. 휴스턴은 그나마 계약 후 첫 두 시즌은 평균 20점 고지를 넘으며 맹활약했지만 팀은 이미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휴스턴이 활약한 2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실패한 뉴욕이다. 거기다 휴스턴은 이후 무릎 부상 이슈가 터지며 2004-05시즌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해버렸다.
연이은 삽질에도 레이든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2002년에는 팀 골밑의 핵심이었던 마커스 캠비, 주전 포인트가드였던 마크 잭슨, 드래프트에서 7순위로 뽑은 네네를 넘겨주며 덴버로부터 안토니오 맥다이스를 데리고 왔다. 그러나 직전 시즌 10경기 출전에 그치는 등 이미 몸 상태에 의문부호가 붙어 있던 맥다이스는 무릎 부상을 당하며 2002-03시즌을 한 경기도 소화하지 못했고, 2003-04시즌 복귀했으나 이미 예전의 기량을 잃은 채 18경기 평균 8.4점에 그치며 피닉스로 떠났다.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더 도움이 되는 운영을 선보인 레이든은 결국 그렇게 뉴욕에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무능한 단장이 어떻게 팀을 망가뜨릴 수 있느냐를 단적으로 보여준 교과서 같은 예가 바로 레이든이다.
레이든의 뒤를 이어 뉴욕의 단장으로 부임한 이는 아이재아 토마스다. 그는 부임 직후 레이든의 잔재들을 청산하겠다고 선언했다. 사실 전임 단장이 워낙 역대급 행보를 보였기에 토마스가 팬들에게 비난을 받는 것은 여간해서는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러한 기적 같은 일을 연출해냈다.
뚜껑을 열어 본 토마스는 '레이든 시즌2'나 마찬가지였다. 성적에 대한 조급함으로 팀의 드래프트 픽을 마구잡이로 팔았고, '카드 돌려막기' 식으로 고액 연봉자들을 사들였다. 그 결과 뉴욕은 현재와 미래가 모두 사라진 암울한 팀으로 변모했다. 2004-05시즌부터 2009-10시즌까지 6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진출 실패. 토마스의 후임으로는 도니 월시가 부임했지만, 이미 뉴욕의 상태는 단기간에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희망은 있을까
안타깝게도 뉴욕의 암흑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카멜로 앤써니와 아마레 스타더마이어를 주축으로 2010-11시즌부터 3시즌 연속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반짝'했던 시절도 있었으나 그나마도 컨퍼런스 파이널 무대는 구경조차 하지 못했다. 이들의 시대가 종료된 이후에는 최근 7시즌 연속 플레이오프 무대를 밟지 못하고 있는 뉴욕이다. 이 기간 뉴욕의 승률은 약 32.0%에 불과하다. 지금의 뉴욕은 그야말로 동네 북 신세로 전락했다.
문제는 좋지 못한 성적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좀처럼 드래프트를 통해 유망주를 수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5년 드래프트에서 4순위로 크리스탑스 포르징기스를 건졌으나, 그는 전방십자인대 부상을 당한 후 팀을 떠나 현재는 댈러스에서 펄펄 날고 있다.
최근 3년간 1라운드에서 프랭크 닐리키나(2017년 8순위), 케빈 낙스(2018년 9순위), R.J. 배럿(2019년 3순위)을 지명했으나 닐리키나와 낙스는 이미 버스트를 향해 달려가는 분위기다. 그나마 배럿이 루키 시즌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쳤으나 팀의 미래를 맡길만한 코어가 되기 위해서는 큰 폭의 발전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한 뉴욕은 대형 FA 영입 작업을 위해 분주히 준비 중이다. 그들이 노리고 있는 시장은 2020-21시즌을 마친 후 펼쳐진다. 이 때 FA 선수로는 야니스 아데토쿤보, 브래들리 빌, 빅터 올라디포 등 대어들이 쏟아지는데 뉴욕은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당초 뉴욕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케빈 듀란트, 카이리 어빙의 동시 영입을 꿈꿨다. 그러나 지난 파이널에서 듀란트가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을 당하자 이들을 동시에 영입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오가기 시작했고, 결국 뉴욕은 플랜B를 가동했다. 또한 빅 마켓에 대한 이점이 과거에 비해 크지 않은 현재 시장 분위기에서 강팀과 거리가 먼 뉴욕은 FA 선수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다.
뉴욕이 가동한 플랜B는 그들의 지난 여름 행보를 보면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타지 깁슨(2년 2,00만 달러), 웨인 엘링턴(2년 1,600만 달러), 줄리어스 랜들(3년 6,210만 달러), 바비 포티스(1년 1,500만 달러), 엘프리드 페이튼(2년 1,600만 달러), 마커스 모리스(1년 1,500만 달러), 레지 불록(2년 820만 달러). 모두 지난 여름 뉴욕이 영입한 선수들이다.
이들을 보면 특이한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랜들을 제외한 선수들은 모두 2년 이하의 계약 기간으로 잡았다는 것. 즉, 뉴욕은 이들의 계약이 한꺼번에 끝나는 2021년 여름을 노리겠다는 것이다.
물론 뉴욕의 야심찬 계획이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 어쩌면 지난 여름과 마찬가지로 2021년에도 FA들의 철저한 외면을 받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뉴욕의 암흑기는 더욱 길어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2021년 여름은 뉴욕의 암흑기 탈출을 위한 중대한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뉴욕은 자신들의 계획을 완벽히 성공시켜 오랫동안 지속되어 온 지긋지긋한 암흑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2021년 여름 보여줄 뉴욕의 행보에 많은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