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키움 서건창이 2020년 11월 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득점을 올리고 있다. 잠실 | 최승섭기자 thunder@sportsseou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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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서울 윤세호기자] “나도 깜짝 놀랐다. 선수측에서 먼저 연봉을 삭감해달라는 것은 처음 봤다.”
초유의 일이다. 선수가 연봉협상 테이블에서 삭감을 요청했다. 물론 아무 의도없이 이뤄진 일은 아니다. 프리에이전트(FA) 등급제와 보상규모를 고려한 결과다. 키움 서건창이 지난해 연봉 3억5000만원에서 1억2500만원 삭감한 2억2500만원에 올해 연봉 계약을 마쳤다.
키움 구단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키움 김치현 단장은 12일 연봉협상 결과를 발표한 후 “서건창 선수 에이전트가 첫 협상 테이블부터 삭감을 요청했다. 원하는 삭감 규모도 너무 컸다. 당초 우리는 3000만원 삭감한 금액을 제시했는데 서건창 선수 측은 9500만원을 더 삭감하기를 바라더라. 거의 1억원을 더 깎아달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나도 깜짝 놀랐다. 선수 측에서 먼저 연봉을 삭감해달라는 것은 처음 봤다. 당황스러워서 일주일 더 시간을 주겠다고 했다. 가장 마지막에 계약을 체결한 선수도 서건창이었다. 결국 서건창 선수가 요청한 대로 9500만원을 더 삭감한 금액에 사인했다”고 설명했다.
일년 후 FA 시장을 내다보면 어느정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다가오는 겨울 FA가 되는 것을 고려했을 때 연봉을 낮춰 보상규모를 줄이는 게 유리하다. 초특급 FA가 아닌 이상 연봉을 낮추고 FA 등급도 낮추면 시장에서 가치는 상승할 수 있다. 보상규모가 줄어드는 만큼 복수의 구단이 경쟁할 확률도 올라간다.
지난달 최주환이 그랬다. 많은 팀들이 두산 FA 중 유독 연봉이 낮았던 최주환을 주시했고 경쟁 구도가 형성됐다. 최주환 에이전트는 SK와 FA 계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협상 과정에서 구단들이 최주환 선수의 연봉을 두고 많이 질문하셨다. 시장에서 최주환 선수의 연봉이 유리하게 작용한 부분도 있었다”고 밝혔다.
최주환은 지난해 연봉 2억7000만원을 받았다. 허경민(4억8000만원), 오재일(4억7000만원)보다 2억원 이상이 적었다. 당연히 최주환을 영입하는 구단의 보상 규모도 다른 FA보다 작다. SK는 지난달 18일 두산의 요청에 따라 내야수 강승호를 보상선수로 보냈고 보상금 5억4000만원을 부담했다. 서건창의 올해 연봉 2억2500만원에도 최주환과 흡사한 셈범이 적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서건창은 다음 겨울 FA B등급으로 분류돼 시장에 나온다. B등급 선수의 보상규모는 보호선수 명단 25인외 1명+연봉 100%, 혹은 연봉 200%다.
서건창 외에 키움 예비 FA인 박병호와 한현희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박병호는 지난해 20억원보다 5억원 삭감된 15억원에 사인했고 한현희는 동결된 2억9000만원에 연봉협상을 마쳤다. 김 단장은 “박병호 선수는 고과산정 기준에 따라 연봉이 책정됐다. 박병호 선수의 경우 어차피 FA C등급이라 보상이 없다. 한현희 선수는 연봉 3억2000만원 이상이면 A등급이 되는데 선수 측에서 동결된 금액에 금방 사인했다. B등급을 고려한 선택 아니겠나”라고 내다봤다.
FA가 가치를 올리는 방법은 간단하다. 경쟁이 붙으면 된다. 그런데 경쟁이 붙기 위해선 실력 외에 요소도 중요하다. 이적시 전력에 보탬이 될만한 기량도 갖춰야 하지만 보상규모가 너무 커도 안 된다. 이적시 보상이 붙는 서건창과 한현희 모두 같은 맥락에서 이번 연봉협상을 마무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