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34·토론토)은 지난 4일 보스턴과 경기에서 토론토 이적 후 ‘진짜 홈경기’를 치렀다. 캐나다 토론토에 위치한 로저스센터에 토론토 유니폼을 입고 나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2020년 시즌을 앞두고 토론토와 4년 8000만 달러에 계약한 류현진은 이날 경기 전까지 토론토의 에이스로서 32경기에 나갔다. 그런데 정작 로저스센터에서 등판한 기억이 하나도 없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만든 해프닝이자, 어쩌면 비극이었다.
토론토는 캐나다 도시를 연고로 하는 유일한 팀이다. 나머지 팀들은 미국 내 이동이지만, 토론토는 다르다. 아무리 미국과 캐나다의 왕래가 잦은 편이라고 해도 엄연히 국경을 건너야 한다. 코로나19 사태 속에 각국이 국경을 걸어 잠그거나 기준을 까다롭게 했고, 캐나다 정부 또한 마찬가지였다. 류현진은 토론토 유니폼을 입은 지 1년 반이나 지나 로저스센터에 설 수 있었다.
이는 메이저리그(MLB) 역사에 깨알같이 남을 진기록이었다. 메이저리그 칼럼니스트이자 소식통인 제이슨 스탁은 류현진의 이번 등판에 반전이 숨어 있다고 했다. 스탁이 통계전문업체 ‘STATS’에 문의한 결과, 류현진은 팀의 홈 경기장에 서기까지 다른 경기장에서 가장 많은 등판을 했던 투수로 기록됐다. 류현진은 홈구장인 로저스센터에서 등판하기 이전 32경기를 다른 구장에서 던졌다.
스탁과 ‘STATS’에 따르면 이전 기록은 1960년 필 리건이 가지고 있던 12경기에 불과했다. 리건은 1960년 7월 디트로이트와 계약했다. 그런데 홈구장에서 등판하기 전, 볼티모어·워싱턴·보스턴·뉴욕·시카고·캔자스시티·LA 등 다른 구장에서 12번 선발 등판한 뒤야 비로소 디트로이트 홈 데뷔전을 가질 수 있었다.
스탁은 “당시 도대체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세관이 관련된 건 아니었다”고 농담을 던졌다. 세관은 류현진의 떠돌이 생활을 만든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더 대단한 성적이다. 토론토와 류현진은 1년 이상 떠돌이 생활을 해야 했다. 세일런 필드, TD볼파크를 홈으로 썼지만 이곳은 사실상 홈구장이 아니었다. 그냥 명목상의 홈경기를 치르기 위해 빌린 경기장에 불과했다. 시설도 열악했고, 홈이라는 안정감도 주지도 못했다. 팬들에게는 고마웠지만, 이는 세일런 필드에서의 마지막 경기 당시 토론토 선수들의 회상에서도 확인된다.
특히 지난해에는 선수단 시설조차 원정 팀에게 제공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상당수 선수들은 토론토의 집을 떠나 숙소 생활을 했다. 타 팀 선수들은 원정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편안한 곳에서 가족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었지만, 토론토 선수들은 그렇지 못했다. 심리적으로 스트레스가 큰 일정이었다.
하지만 류현진은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최고의 활약을 선보였다. 토론토 입단 후 16승7패 평균자책점 3.03의 맹활약으로 구단의 기대치에 부응했다. 같은 성적을 낸 다른 투수들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할 이유다. 이제 류현진도 ‘집’의 편안함을 만끽할 차례다. 류현진은 이적 후 첫 로저스센터 등판(4일 클리블랜드전)에서 7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