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드람 2021-2022 V리그 여자부 미리보기 ①] 광주 AI 페퍼스
한국 여자배구는 지난 8월 8일 폐막한 2020 도쿄 올림픽에서 4강에 진출하는 기대 이상의 성과를 올렸다. 당초 한국 여자배구는 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했던 '쌍둥이 자매' 이재영과 이다영(POAK)이 동시에 빠지면서 고전이 예상됐다. 하지만 '캡틴' 김연경(상하이 브라이트 유베스트)을 중심으로 선수들이 '원팀'으로 똘똘 뭉치면서 일본, 터키 등 강호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4강이라는 좋은 성적을 올렸다.
사실 한국 여자배구의 성장과 인기는 갑작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프로 출범 전까지만 해도 남자배구의 들러리처럼 보일 정도로 주목을 받지 못하던 여자배구는 김연경이라는 걸출한 스타의 등장 이후 꾸준히 인기가 상승했다. 국제대회에서 남자배구보다 여자배구가 더 좋은 성적을 올린 것은 이미 오래 전 이야기이고 최근에는 국내 V리그에서도 여자부 경기의 시청률이 남자부를 추월하고 있다.
여자배구의 인기가 꾸준히 상승하면서 배구계 안팎에서는 제7구단 창단에 대한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됐다. 그리고 지난 9월 광주광역시를 연고지로 한 V리그 여자부의 7번째 구단 AI페퍼스가 정식으로 창단했다. 아직은 기존 구단들에 비해 전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지만 IBK기업은행 알토스 이후 10년 만에 등장한 막내구단의 가세는 리그에 활기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기업은행 이후 10년 만에 창단한 신생구단
▲ 이적생 이한비는 만24세의 젊은 나이에 신생팀 AI페퍼스의 주장이라는 중책을 맡게 됐다. |
ⓒ 한국배구연맹 |
사실 여자부 신생구단 창단의 필요성은 몇 년 전부터 배구인들과 배구팬들 사이에서 꾸준히 제기된 이야기였다. 배구팬들은 정지윤(현대건설 힐스테이트)과 박은진,박혜민, 고의정(이상 KGC인삼공사), 이주아(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문지윤(GS칼텍스 KIXX) 등 우수신인들이 대거 쏟아져 나왔던 2018년이 신생구단 창단의 적기였다며 아쉬워하기도 한다. 하지만 다소 늦게나마 V리그 여자부에 신생구단이 창단한 것은 대단히 반가운 일이다.
AI페퍼스는 초대감독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을 4강으로 이끌었던 김형실 감독을 선임했다. 1951년생 김형실 감독은 한국나이로 일흔이 넘은 노장감독으로 미도파 여자배구단 코치 시절이던 1983년부터 1986년까지 현재 흥국생명을 이끌고 있는 박미희 감독을 지도했던 경험이 있다. 오는 11월 2일 흥국생명과 AI페퍼스의 1라운드 경기에서는 무려 35년 만에 사제지간 맞대결이 성사될 예정이다.
AI페퍼스는 GS칼텍스와 인삼공사에서 감독을 역임하며 2007-2008 시즌 GS칼텍스의 프로 첫 우승을 이끌었던 이성희 감독을 수석코치로 영입했다. 여기에 2000년대 남자배구의 거포로 활약했던 이경수 KB손해보험 스타즈의 코치를 데려왔다. 감독부터 코치들까지 지도자로서의 실적과 평가에서는 호불호가 있지만 적어도 이름값 만큼은 어떤 구단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는 화려한 코칭스태프를 구축한 셈이다.
신생구단 혜택으로 외국인 선수 1순위 지명권을 얻은 AI페퍼스는 트라이아웃에서 최대어로 꼽힌 엘리자벳 이네 바르가를 영입했다. 헝가리와 루마니아 국적을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바르가는 지난 7월 입국해 자가격리를 마치고 선수단에 합류해 새 동료들과 호흡을 맞추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신생구단 특별지명을 통해 기존구단들로부터 보호선수 9명을 제외한 선수 5명(현대건설 제외)을 선발했다.
AI페퍼스는 6월 한국도로공사 하이패스와의 재계약에 실패한 미계약 FA 하혜진과 실업팀 양산시청에서 활약하던 세터 구솔을 영입했다. 9월에는 대구시청에서 활약하던 윙스파이커 박경현을 영입해 선수단을 보강한 AI페퍼스는 9월7일에 열린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7명의 신인 선수를 선발했다. 그 중에는 실업배구 10년 경력을 자랑하는 '중고신인' 문슬기 리베로(1라운드6순위)도 있다.
'무서운 막내' 될까 '승점 자판기' 될까
▲ 'FA미아'가 될 뻔 했던 하혜진은 AI페퍼스와 계약하면서 프로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
ⓒ 한국배구연맹 |
지난 6월 한국배구연맹에서 공시한 7명의 선수에 외국인 선수 엘리자벳, 추가 영입한 박경현, 그리고 신인 선수 7명이 가세한 AI페퍼스는 오는 16일에 개막하는 2021-2022 V리그에 참가할 16명의 선수단 구성을 마쳤다. 포지션 별로 분배는 잘 이뤄져 있지만 기존 구단들과 비교해 경쟁력 있는 전력을 구축했다고 평가하긴 힘들다. 자칫 패배가 익숙해졌다가는 역사적인 꼴찌팀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다른 구단들도 마찬가지지만 신생구단은 외국인 선수의 비중을 더욱 높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 192cm의 좋은 신장에 만22세의 젊은 나이를 가진 엘리자벳이 지난 시즌의 안나 라자레바(페네르바흐체 SK)처럼 1순위 외국인 선수의 위용을 뽐낸다면 AI페퍼스도 충분히 '신생팀 돌풍'을 일으킬 수 있다. 하지만 엘리자벳이 V리그 적응에 시간이 걸리거나 부상에 허덕인다면 AI페퍼스의 희망도 희미해질 확률이 높다.
흥국생명 시절 주로 백업 윙스파이커로 활약했던 이한비는 AI페퍼스로 이적하자마자 만24세의 젊은 나이에 주장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연봉 역시 지난 시즌 5000만원에서 9000만원으로 무려 80%나 인상된 만큼 주전 윙스파이커와 토종 주공격수로서 팀을 이끄는 활약이 필요하다. 김형실 감독이 '장차 국가대표 주전 세터가 될 재목'이라고 극찬했던 1순위 신인 박사랑은 이현, 구솔 등 언니들과의 치열한 주전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도로공사 시절부터 뛰어난 공격력을 인정 받아 대표팀에도 종종 이름을 올렸던 하혜진은 이번 시즌부터 AI페퍼스로 팀을 옮겨 프로생활을 이어간다. 외국인 선수 엘리자벳과 포지션이 겹치는 하혜진이 현실적으로 단기간에 윙스파이커로 변신하기는 쉽지 않다. 따라서 최가은, 최민지, 서채원 등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선수들이 포진한 센터로 변신할 확률이 높다(하혜진은 도로공사 시절에도 센터로 활약했던 경험이 있다).
'제6구단 '기업은행은 창단 첫 시즌이었던 2011-2012 시즌 '슈퍼루키' 김희진과 박정아(도로공사)의 활약에 힘입어 30경기에서 13승을 올리며 6개 구단 중 4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김희진, 박정아 같은 특급신인이 없는 AI페퍼스에게 10년 전의 기업은행 같은 성적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과연 V리그에 뛰어든 7번째 구단 AI페퍼스는 이번 시즌 언니들을 물고 늘어지는 '끈질긴 막내'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