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년 FA 시장 최대어로 손꼽히는 삼성 구자욱 ⓒ곽혜미 기자[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안치홍은 2020년 시즌을 앞두고 롯데와 특이한 방식의 다년 계약을 맺었다.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려는 롯데, 그리고 총액을 최대한 높이려는 선수 측의 요구가 맞물려 2+2년에 상호옵션이 낀 이색 계약이 탄생했다. 그간 KBO리그에서는 볼 수 없는 형식이었다는 점에서 참신함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보장 계약 기간은 2년이지만, 2021년 시즌이 끝나면 롯데가 안치홍의 남은 2년 옵션 실행을 결정하는 구조였다. 안치홍 역시 선택권이 있었다. 계약 연장을 해도 되지만, 반대로 거부하고 시장에 나갈 수도 있었다. 롯데는 2021년 시즌 중반 옵션 실행을 결정하면서 4년 계약 완주를 선언했다.
그간 KBO리그에서 보지 못했던 계약 덕에 유권 해석도 이뤄졌다. KBO는 결국 지난 7월 “FA뿐 아니라 모든 선수의 다년 계약이 가능하다”고 구단에 공지했다. 이 덕에 FA 자격을 얻지 못한 선수들도 다년 계약을 할 수 있는 제도적 길이 열렸다.
가장 먼저 활용한 팀은 SSG다. SSG는 14일 팀의 핵심 투수인 박종훈 문승원과 각각 5년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박종훈은 5년 총액 65억 원, 문승원은 5년 총액 55억 원에 사인했다. FA를 앞두고 미리 선수를 선점하는 메이저리그식 계약이 이뤄진 셈이다. 안치홍 계약이 불러온 나비효과다.
메이저리그처럼 어린 유망주를 초장기 계약으로 묶는 건 아직까지 실현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에 구단으로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선수와 에이전시도 아직은 명확한 기준이 없다. 8년 이상의 초장기 계약을 받는 게 유리한지, 혹은 그래도 FA 자격을 얻는 게 유리한지 고민할 법하다. 해외 진출을 꿈꾸는 선수들은 발이 묶이는 것을 꺼릴 수 있다.
그러나 FA를 1년 앞둔 선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어느 정도 계산이 서기 때문이다. 박종훈과 문승원 또한 내년 시즌을 정상적으로 마치면 FA 자격을 얻는 선수들이었다. 팔꿈치 수술을 받고 이탈한 두 선수는 SSG에 대한 충성심과 더불어 지금 계약을 하는 것이 불리하지 않다는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비슷한 방식의 계약을 추구하는 구단이 있을지도 관심이다. 2022년 시즌이 끝나면 양의지(NC)와 같은 FA 재자격자는 물론, 박민우(NC), 구자욱(삼성) 한현희 정찬헌 박동원(이상 키움), 임찬규 유강남 채은성(이상 LG), 한유섬(SSG) 등 수준급 선수들이 첫 FA 자격을 얻어 시장에 나온다. 구단과 선수들도 SSG의 사례를 본 만큼 비FA 장기계약에 관심을 가질 법하다.
두 가지 효과가 있다. FA 시장엔 나가면 아무리 의지가 있다고 해도 잔류 계약을 장담할 수 없다. 다른 팀과 경쟁이 붙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시점은 다르다. 사실상 우선협상권을 가질 수 있다. 또 2023년부터 샐러리캡이 시행된다는 점을 생각하면, 2022년 연봉을 높여 추후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는 내년부터는 누릴 수 없는 효과다.
최대어로 뽑히는 구자욱이 가장 큰 관심을 모을 전망이다. 삼성은 구자욱을 잡지 않을 이유가 없고, 가능하다면 시장에 나가기 전 선점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을 게 분명하다. 올해 골든글러브 수상자인 구자욱은 리그 정상급 기량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팀에서 상징성이 크고, 여기에 내년 만 29세의 젊은 선수다. 장기 계약을 줘도 상대적으로 위험부담이 덜한 선수다.
문승원 박종훈이 미리 계약함에 따라 내년 FA 시장은 가뜩이나 부족한 선발투수들이 더 줄어들었다. 남은 선발투수들의 가치가 상승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믿음이 있는 선발투수라면 원 소속구단의 장기계약 제안이 나올 수도 있다. 한현희 임찬규 등 선발 최대어들의 거취가 관심이다.
물론 선수들도 올해 과열된 FA 시장을 봤다. 구단의 장기계약안은 리스크를 떠안기 때문에 FA 금액보다는 적은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FA 시장도 매년 널뛰기 경향이 있다. 급속도로 과열됐다가, 급속도로 식는 해도 있다. “FA는 타이밍”이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내년부터는 샐러리캡 시행으로 구단의 운신폭이 좁아질 수도 있어 여러 가지 고려는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