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일 동안 잠을 제대로 잔 적이 없다. 눈 뜨면 축구만 봤다. 팬들을 위해 오늘 죽자는 각오로 꼭 승리하겠다." 1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하나원큐 K리그1 2022' 36라운드 수원 삼성과의 맞대결을 앞둔 최원권 대구FC 감독대행의 필승 각오는 결연했다. "대구가 전쟁이면 우리는 더 절박한 전쟁이다. 무조건 승점 3점을 가져와야 한다." 지난해까지 대구 사령탑이었던 '수원 삼성 레전드' 이병근 감독의 말대로였다. '축구전쟁'이었다. 빅버드 서포터석엔 '끝까지 뛰어! 우리도 죽어라 뛸게'라는 걸개가 나부꼈다.
올 시즌 K리그1은 이론상 최대 3개팀까지 강등이 가능하다. 최하위인 12위 성남FC가 자동 강등된 상황. 11위는 K리그2 2위와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10위는 K리그2 4-5위 플레이오프 승자가 3위와 겨뤄 이긴 팀과 2023시즌 K리그1 티켓을 놓고 싸워야 한다. 10위 수원(승점 38)과 9위 대구(승점 41)의 승점 차는 단 3점, 다득점에서 대구(45골)가 37골의 수원을 월등히 앞서 있어 이날 대구가 수원을 잡고 6점 차가 될 경우 2경기를 남기고 사실상 잔류가 확정되는 상황. 이겨야 사는 '생존전쟁'의 한가운데서 10위 수원과 9위 대구가 운명처럼 맞닥뜨렸다. 그리고 90분 전쟁의 끝, 양팀의 희비가 극명하게 엇갈렸다. 대구가 수원 원정에서 2대1로 승리하며 강등의 위기에서 벗어났다.
전반 20분 만에, 대구의 선제골이 나왔다. 단단한 스리백 수비로 웅크리고 있던 대구의 특유의 강력한 역습 한방이 통했다. '대구의 왕' 세징야가 중원에서 쇄도하자 수원 수비 3명이 달라붙었다. 세징야가 박스 오른쪽으로 달려오는 고재현의 발밑으로 딱 밀어준 킬패스, 원샷원킬 찬스를 놓치지 않았다. 올 시즌 폭풍성장한 '1999년생 영건' 고재현이 가볍게 골망을 흔들었다. 2경기 연속골, 시즌 13호골. 원정석 대구 서포터들이 "고재현!"을 연호했다. FC서울과의 2연전, 수원FC와의 홈경기에서 3연승을 달린 대구의 전반 기세는 뜨거웠다.
후반 시작과 함께 수원은 한석종 대신 사리치, 박상혁 대신 마나부를 투입해 공격적인 변화를 꾀했다. '왼발의 달인' 이기제의 발끝이 불을 뿜었다. 후반 2분 이기제의 프리킥에 이은 전진우의 헤더가 대구 골키퍼 오승훈에게 막혔다. 후반 3분 이기제의 코너킥에 이은 세컨드볼, 마나부의 헤더가 크로스바를 살짝 넘겼다. 그리고 후반 5분 마침내 수원의 분투가 결실을 맺었다. 이기제의 '택배 코너킥'을 받은 안병준의 헤더가 골망을 갈랐다. 이기제의 시즌 13호 도움.
후반 15분 대구는 많이 뛴 정치인을 빼고 '베테랑' 이근호를 투입했다. 후반 16분 이기제의 프리킥 역시 예리했다. 전진우의 헤더가 위로 떴다. 후반 18분 전진우가 박스 안에서 상대 수비와 충돌하며 쓰러졌고 VAR이 가동됐지만 경기는 속행됐다. 승점 3점이 절실한 양팀의 전쟁은 점입가경. 빛의 속도로 오르내리는 일진일퇴의 공방이 이어지던 후반 35분, 이 뜨거운 전쟁을 끝낸 영웅은 '대구의 왕' 세징야였다. 홍 철의 크로스를 머리로 밀어넣으며 짜릿한 결승골을 터뜨렸다. 2대1승. "위아(We are) 대구!" "이겼다! 이겼다!" 함성이 빅버드에 물결쳤다.
올시즌 원정 징크스에 시달리며 지난 1일 FC서울전에서 첫 원정승을 거둔 대구가 해묵은 '빅버드 징크스'까지 깨뜨렸다. 원정 2연승, 리그 4연승과 함께 절체절명의 강등 전쟁에서 탈출했다. 2020년 8월 2일 수원 삼성 원정 1대0 승리가 유일했던 대구가 2년 2개월 만의 기적같은 승리와 함께 활짝 웃었다. 승점 44점, FC서울(승점 43)을 밀어내고 8위에 오른 대구가 잔류를 사실상 확정짓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