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 서울 중구에 있는 한화그룹 본사 앞에 트럭 두대가 멈춰섰습니다. 트럭 전광판엔 수베로 감독을 경질한 한화 프런트를 향한 비판이 담겼습니다. 일부 한화 팬들의 시위였습니다.한화는 지난 11일 삼성과 홈 경기에서 4대0으로 이긴 직후 수베로 감독을 경질했습니다. 수베로 감독 부임 이후 한화는 두 시즌 연속 꼴찌를 벗어나지 못했고, 올시즌도 하위권에 처졌습니다. 한 팀의 사령탑은 결과에 따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죠. 하지만 팬들은 '왜 지금이냐'는 물음을 제기했습니다. 경질 당시 한화는 하위권(9위)이긴 했지만 6경기에서 5승을 거두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었습니다. 시위에 나선 팬들도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연승 당일 감독 경질, 안하무인 프런트"라는 비판 문구를 내세웠습니다.한화가 2021년 수베로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기면서 제시한 청사진도 소환됐습니다. 3년의 시간동안 팀을 '리빌딩' 해달라고 했지만 결국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만 구단은 수베로 감독이 3년차가 된 올해도 여전히 실험적인 야구를 하고 있는 점을 납득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는 '이기는 야구'를 해야할 때라는 게 구단의 판단으로 읽힙니다. 후임 사령탑을 맡은 최원호 감독도 "이기는 야구를 위한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과제를 받았다고 밝혔습니다.그럼에도 팬들은 '이기는 야구'를 하지 못한 책임을 감독에게 고스란히 전가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었습니다. 반복되는 외국인 선수 영입 실패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는데요. 일부 팬들은 "한화는 최약체 팀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외국인 선수들의 성적이 부진했다"며 "연이은 외국인 선수 영입 실패가 성적 부진으로 직결됐지만 프런트는 이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경질 배경 가운데 하나로, 수베로 전 감독의 '실험 야구'도 지적받습니다. 적극적인 수비 시프트가 대표적인데요. 이게 일부 선수들에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해석도 나옵니다. 부임 직후 선수들과 면담을 가진 최원호 감독은 "수정할 부분은 시프트"라로 꼽았습니다. "투수들과 대화해보니 극단적인 시프트를 원치 않더라"며 "이제까지는 투수 동의를 받지 않고 시프트를 했다면, 이제는 투수 동의를 얻은 상황에서 하려고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물론 최 감독은 전임자가 잘 해온 건 이어받겠다고 밝혔습니다. 수베로 전 감독은 젊은 선수에게 폭넓은 기회를 줬고 노시환 문동주 등의 성장을 이끌어냈는데요. 최 감독은 "수베로 감독님이 다양한 포지션에 다양하게 경험을 해주셔서 선수 파악에 도움이 된 건 사실"이라며 "젊은 선수 관리와 적극적인 주루는 수베로 감독님 오셔서 온 긍정적인 변화"라고 설명했습니다.지난 주말 미국으로 떠난 수베로 전 감독은 2년 4개월 동안 한화를 이끈 과정을 '씨앗 심기'에 비유했습니다. 수베로 전 감독은 "씨앗을 심는 이가 따로 있고 거둬들이는 이가 따로 있듯이 제가 할 일은 묵묵하게 땀 흘리면서 씨앗을 심는 것이었다"며 자신이 심은 씨앗이 좋은 결실이 맺기를 기원했습니다.
선수들과 팬들에게도 마지막 인사를 남겼는데요. "감독직을 많이 해왔고 수많은 이별이 있었지만 이번만큼 마음 아픈 이별은 없었던 것 같다"며 "많은 선수들을 아들처럼 대해왔고 헤어지는 게 가장 힘들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선수들을 향해 "하루 아침에 성장하는 법은 없다"며 "이제 강팀이 될 준비가 된 팀이니 더 성장해서 함께 웃었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특히 한화 팬들을 향해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팬심"이었다며 애정을 드러냈습니다. "17점 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밀어내기 볼 넷으로 한 점을 얻었다고 '아파트' 노래를 틀고 경사가 난 마냥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팬 분들의 함성소리는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한화 이글스는 좋은 팀이 될 것이라 장담한다"며 "끝까지 한화를 응원해주시기를 바란다. 그러면 머지 않아 웃는 날이 올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