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성(28‧샌디에이고)은 메이저리그 진출 3년 차를 맞이해 경력 최고의 시즌을 보내고 있다. 수비에서 리그 최고수 평가를 받는 한편, 공격에서도 차츰 발전하며 이제는 리그 정상급 내야수로 발돋움했다.
김하성에게 '리그 정상급'이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낯설 수도 있겠지만, 사실 성적을 놓고 보면 당연히 수여해야 할 타이틀이다. 김하성의 수비력은 더 이야기를 하는 게 불필요할 정도로 인정을 받고 있다. 지난해 내셔널리그 유격수 부문 골드글러브 최종 후보에 들어가며 모두를 놀라게 한 김하성은, 올해 각종 수비 지표에서 리그 1위를 다투고 있다.
DRS, OAA 등 수비 지표에서 모조리 2루수 부문 최정상급을 달리고 있는데다, DRS에서는 시즌 초반부터 지금까지 리그 전 포지션의 선수들을 선도하고 있다. "수비를 잘한다"는 이미지가 이제는 공교하게 박혔다. 올해는 아시아 내야수로는 처음으로 골드글러브 수상까지 기대되고 있다. 전국적인 인지도도 많이 높아졌고, 투표인단이 좋은 평가를 하고 있는데다 참고할 만한 자료까지 좋으니 못할 이유가 없는 상황이다.
여기에 공격력도 이제는 평균 이상을 뽐내고 있다. 김하성은 25일(한국시간) 피츠버그와 경기에서 메이저리그 데뷔 후 첫 멀티홈런 경기를 했다. 23일 디트로이트전에서는 개인 첫 한 경기 5출루 경기를 하는 등 최근 출루 능력이 뜨겁다.
김하성은 25일 현재 96경기에서 타율 0.270, 14홈런, 37타점, 18도루, OPS(출루율+장타율) 0.810을 기록 중이다. 2021년 0.622, 2022년 0.708과 견줘 큰폭으로 올랐다. 조정 득점 생산력(wRC+)에서도 리그 평균보다 20% 이상 높은 훌륭한 성적을 거두고 있다.
그런 김하성의 성공 발판을 놓은 선배는, 어쩌면 소속팀 선배였던 강정호(36)였을지도 모른다. 그간 메이저리그에서 "아시아 내야수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었다. 실제 일본을 대표하는, 뛰고 난다는 선수들이 고전한 것을 보면 이는 반박하기 어려웠을지 모른다.하지만 강정호가 선구자 몫을 했다. 2015년 피츠버그와 계약한 강정호는 첫 해 15홈런, 그리고 이듬해인 2016년 21홈런을 치며 아시아 내야수에 대한 선입견을 확 깼다. "아시아 내야수도 힘을 가지고 있다"는 명제를 증명한 것이다. 이는 김하성에 대한 좋은 평가로 이어진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 강정호는 25일 샌디에이고와 피츠버그의 경기가 열린 펫코파크를 찾았다. 물론 '관중'의 신분이었고, 관중석에 앉아 있었다. 현재 개인 사업차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강정호가 펫코파크를 찾은 건 역시 히어로즈 시절 후배이자 자신의 후계자였던 김하성을 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으로 피츠버그는 자신의 메이저리그 소속팀이었다.
사실 강정호의 방문은 아무도 모를 수도 있었지만, 파울볼 하나가 그의 존재를 조명했다. 관중석으로 파울볼이 날아온 것을 왼손을 쭉 뻗어 맨손으로 잡아낸 것이다. 사실 부상 위험 탓에 일반인들에게 맨손 캐치는 그다지 권장되지 않는다. 하지만 강정호는 야구 선수로서의 본능 때문인지 이를 정확하게 잡아내 주위의 팬들에게 박수를 받았다. 아마 주위의 팬들 중 일부는 강정호를 알아봤을 수도 있다.
현지 중계진은 "이 팬이 야구 선수 같지 않나. 피츠버그에서 뛰었던 강정호다"라고 대번에 알아봤다. 미 스포츠전문매체 '디 애슬레틱' 또한 SNS 계정에서 이 장면을 캡처하며 '피츠버그에서 뛰었던 강정호가 관중석에서 원핸드 캐치로 공을 잡아냈다'고 놀라워했다.음주운전이라는 불미스러운 사건만 없었다면, 어쩌면 강정호와 김하성은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함께 뛰고 있었을지 모른다. 강정호는 3루로 자리를 옮긴 뒤 더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며 홈런을 터뜨렸고, 메이저리그 수준의 빠른 공에도 굉장히 강했다. 슈퍼스타로 성장할 수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메이저리그에서 최소한의 경쟁력을 갖추며 선수 생활을 이어 갔을 수도 있었다.
강정호는 키움으로 돌아오려는 몇몇 노력을 했으나 여론에 막혀 실패했고, 지금은 미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관중' 강정호의 슈퍼캐치는 현지 팬들에게 즐거움을 줬지만, 우리 팬들에게는 또 다른 씁쓸함을 남긴 장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