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지도자 황선홍 감독(52)이 2부리그 대전 하나시티즌에서 9개월 만에 지휘봉을 내려 놓았다.
대전은 8일 보도자료를 통해 “황 감독이 지난 6일 부천FC전이 끝난 뒤 ‘대전의 비전과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며 사임 의사를 표명해 받아들였다”고 밝혔다.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인 황 감독은 은퇴 이후 지도자로 활약했다. 포항 스틸러스 감독으로 두 번의 FA컵 우승(2012년·2013년)과 한 번의 K리그1 우승(2013년)을 이루며 명장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FC서울에선 첫해 K리그1 우승(2016년)이라는 성과와 달리 이듬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됐고, 중국 옌볜 푸더에선 부임하자마자 해체되는 불운을 겪었다.
황 감독은 올해 기업구단으로 전환한 대전에서 명예 회복을 노렸지만 조기 하차라는 예상 밖 결과를 남겼다. 황 감독은 구단을 통해 “팬들에 기대에 못 미쳐 송구스럽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힘써주신 구단 모든 분에게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황 감독이 대전에서 물러난 표면적 이유는 성적 부진 때문이다. 하나은행으로 모기업이 바뀐 대전은 올해 승격을 목표로 거액을 투자했다. 브라질 출신의 거물급 골잡이 안드레 루이스와 바이오 등 외국인 선수들을 비롯해 국가대표급 골키퍼 김동준 등 최고의 선수들이 합류했다. 올 여름에는 유럽파 서영재와 또 다른 브라질 외국인 선수 에디뉴까지 데려왔다. 대전이 올해 이적료와 연봉에 투자한 금액은 2부리그를 넘어 1부리그 최상위 수준인 300억원에 달할 정도다.
황 감독도 시즌 중반까지 1~2위를 다투는 성적으로 기대에 부응했다. 그러나 지난달 8일 경남FC전에서 2-0으로 앞서다 2-3으로 역전패한 뒤 3경기 연속 무승부(서울 이랜드FC·FC안양·전남 드래곤즈)에 그치면서 3위로 밀려났다. 부천전 1-0 승리로 반전에 성공했으나 코칭스태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바꾸지는 못했다.
다만 축구 현장에선 황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물러난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올해 2부리그 1위가 1부리그로 자동 승격하고, 2~4위는 플레이오프를 치러 승격팀을 가린다. 대전은 여전히 승격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허정무 이사장과의 마찰에 무게가 실리는 배경이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 원정 16강 진출이라는 성과를 냈던 허 이사장이 선수 기용과 전술 운용에 개입하면서 불협화음을 냈고, 결과적으로 양 측의 파국을 불렀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대전 측에선 통상적인 의견 교환만 있었다고 선을 그었다. 대전의 한 고위 관계자는 “과거 다른 구단에서 문제가 됐던 사례들과 달리 허 이사장이 라커룸에 들어가거나 전술을 직적 제시하는 비정상적인 행동은 없었다”면서 “경기가 끝나면 감독과의 미팅에서 공격과 수비에 대한 의견만 전달했다. 이 정도는 어느 구단도 있는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한편 대전은 황 감독이 떠나면서 생긴 공백을 하루 빨리 메우겠다는 입장이다. 강철 수석코치가 13일 제주 유나이티드전부터 감독대행을 맡지만 황 감독과 10여년간 인연을 맺은 터라 계속 지휘봉을 잡을 가능성은 낮다. 대전 관계자는 “감독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