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닷컴 MK스포츠 박찬형 기자
인기와 관심은 폭발적으로 올라가는데 연맹, 구단, 지도자의 대처 능력은 낙제점이다. 반년 만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선수가 2명이나 나온 여자배구 얘기다.
V리그 여자부는 이제 시청률이나 관중이라는 고전적인 개념으로는 열기를 다 남아내지 못하고 있다. 선수들이 경기장 안팎에서 하는 말과 행동 하나하나가 움짤(움직이는 gif 파일)로 만들어져 순식간에 퍼진다.
SNS 글과 댓글은 물론이고 누구를 친구로 추가했고, 누가 친구 목록에서 사라졌는지도 즉각적인 파장을 낳는다. ‘A는 B랑은 친한데 C하고는 껄끄러운가 봐’ 같은 생각을 팬덤 전체가 공유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여자배구 마니아들이 아이돌 팬덤처럼 팀·선수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동안 연맹, 구단, 지도자들은 이러한 변화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일거수일투족이 무방비로 노출된 선수들이 정신적으로 황폐해지는 현실에서 제3, 제4의 극단적인 선택 시도는 얼마든지 더 나올 수 있다.이들은 여자배구 선수를 아이돌 멤버 개개인, 팀은 아이돌 그룹이나 기획사처럼 취급한다. 그러나 지도자와 구단은 이런 급격한 변화를 따라가기에는 매우 벅차 보인다. 연예계는 고사하고 일반적인 프로스포츠팀에 요구되는 선수단 관리와도 거리가 멀다.
여자배구선수 A가 선수단 내 갈등, 계약 문제, SNS 악성글에 시달리다 지난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지도자 및 구단 측에서 우울증, 수면장애를 호소한 고인의 정신건강을 챙겨줬다는 정황은 없다.
최근 구단 숙소에서 쓰러진 채로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진 B는 선배 선수와 앙금을 SNS로 풀다가 비판적인 여론에 무방비로 노출됐다. 지도자나 소속팀 차원에서 중재하기가 쉽지 않았다면 최소한 온라인 활동 금지령이라도 내렸어야 했다.
종목 자체가 전보다 자주 언론에 보도되면서 여자배구 스포츠베팅 이용자도 날로 늘고 있다. ‘네가 못해서 내 돈을 날렸다’는 악담이 담긴 댓글과 메시지가 부진한 선수 SNS에 쏟아지는 것은 이제 화젯거리도 아니다.
아이돌 팬덤화된 마니아들뿐 아니라 돈을 건 스포츠베팅 참가자들마저 여자배구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동안 한국배구연맹(KOVO)과 V리그 구단들은 외모가 우월한 선수들을 앞세운 마케팅에만 신경을 쓸 뿐이다.
악성댓글이나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법적 대응 움직임도 구단 차원의 선수단 관리보다는 개인 매니지먼트사가 있는 일부 대형스타만 누리는 혜택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경기장 안팎의 언행과 온라인 활동이 모두 노출되는 여자배구 선수들에게 구단이 전문적인 대처법을 조언해주거나 문제가 커지기 전에 적절한 자제를 요청했다는 얘기는 없다.
지도자들도 현역 시절과 너무도 달라진 대외 환경 속에서 인생선배로서 제자들에게 적절한 조언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
날로 커지는 종목 인기와 시장 규모를 지도자, 구단, 연맹이 따라가지 못하는 동안 여자배구 선수들은 일거수일투족이 무방비로 노출되며 정신적으로 황폐해지고 있다. 제3, 제4의 극단적 선택 시도가 얼마든지 더 나올 수 있는 환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