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양효진 /OSEN DB
[OSEN=이상학 기자] 여자배구 ‘FA 최대어’ 양효진(33)이 현대건설에 남았다. 3년 총액 15억원. 그런데 보수가 총액 7억원(연봉 4억5000만원, 옵션 2억5000만원)에서 5억원(연봉 3억5000만원, 옵션 1억5000만원)으로 2억원이나 깎였다. 이른바 ‘페이컷(pay cut)’이다.
페이컷은 선수 스스로 시장 가치보다 저렴한 금액에 계약하는 것을 뜻한다. NBA 스타 르브론 제임스가 지난 2009년 마이애미 히트로 FA 이적하면서 스스로 몸값을 깎은 게 대표적 사례. 당시 마이애미는 또 다른 스타 드웨인 웨이드, 크리스 보쉬도 페이컷하며 슈퍼 팀을 결성한 바 있다.
팀 연봉 총액 상한제 ‘샐러리캡’을 도입한 여자배구는 팀마다 23억원 이하로 선수단을 구성해야 한다. 현대건설은 지난 시즌 28승3패 승점 82점으로 여자부 역대 최고 성적을 내면서 기존 선수들의 연봉 인상이 불가피했다. FA도 양효진을 비롯해 고예림, 이나연, 김주하까지 무려 4명이나 풀렸다.
현실적으로 모든 선수를 붙잡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됐지만 현대건설은 해냈다. 양효진의 2억원 페이컷으로 샐러리캡에 여유가 생기면서 나머지 FA도 모두 잔류시킨 것이다. 지난 시즌 ‘압도적 1강’ 전력을 그대로 보존한 채 다음 시즌을 맞이할 수 있게 됐다. 내년 시즌 후 FA가 되는 황민경, 김연견과 재계약 가능성도 높아져 장기간 독주 체제 발판을 마련했다.
양효진과 현대건설 선수들이 기뻐하고 있다. 2021.12.03 /OSEN DB
샐러리캡 규정에 따라 한 선수가 받을 수 있는 최고 보수 7억원을 받았던 양효진은 다른 팀으로 이적하면 이 금액을 그대로 받을 수 있었다. 신생팀 페퍼저축은행으로의 이적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양효진은 2억원을 포기하며 15년간 몸담은 현대건설에 잔류했다. 도전보다 안정을 추구한 선수 개인의 선택은 존중 받아야 하지만 페이컷은 샐러리캡의 취지와 목적에 반하는 일종의 편법이란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있다.
샐러리캡은 특정 팀의 선수 싹쓸이를 방지하면서 리그 전력 평준화, 균형적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제도. 페이컷은 전력 불균형을 초래해 리그 흥행에도 악재가 될 수 있다. 향후 구단에서 페이컷을 악용하면 양효진이 선례로 작용해 선수 권익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자배구의 페이컷 논란은 ‘월드클래스’ 김연경(34)이 국내에 잠시 복귀한 2020~2021시즌에도 있었다. 당시 김연경은 흥국생명과 연봉 3억5000만원에 계약했다. 해외에서 20억원 이상 받던 고액 연봉자였지만 ‘쌍둥이 자매’ 이재영, 이다영과 FA 계약한 흥국생명은 샐러리캡에 여유가 없었다.
김연경, 양효진 /OSEN DB
상식선을 넘어선 페이컷이었지만 당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해외에서 뛰기 어려운 상황, 1년 연기된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국내에서 최상의 컨디션을 만드는 대의명분이 있었다. 무엇보다 국내 복귀시 흥국생명에서 뛸 수밖에 없었던 김연경의 신분 문제가 있었다. 예외적인 페이컷 사례로 봐야 한다.
FA 신분인 양효진은 순수 페이컷이란 점에서 반향을 일으킬 만하다. 여론을 의식했는지 현대건설도 FA 재계약을 발표하면서 “양효진의 결심에 감사를 표하며 선수 복지 향상 및 향후 선수 생활 이후의 계획을 함께 모색하고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양효진도 “늘 최고 대우를 해줬던 구단이라 현대건설 잔류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데뷔 때부터 뛰어왔던 팀에서 은퇴 전 꼭 우승컵을 들고 마무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밝혔다.
한편 여자부 FA는 13명의 선수 중 12명이 원소속팀에 잔류했다. 이고은이 한국도로공사를 떠나 페퍼저축은행으로 옮긴 게 유일한 이적. 기대했던 대이동 없이 다소 싱겁게 FA 시장이 마무리됐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