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테임즈 공식 은퇴 선언... 코리안 드림의 모범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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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10월 2일 프로야구 최초 '40홈런·40도루'를 달성했을 당시의 에릭 테임즈 모습. |
ⓒ 연합뉴스 |
KBO리그 역사상 최고의 외국인 선수로 꼽히는 에릭 테임즈가 공식 은퇴를 선언했다. 테임즈는 2월 16일 자신의 SNS를 통하여 은퇴 사실을 밝히며 특별히 한국팬들을 위한 한글 소감과 NC 다이노스 시절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올렸다.
테임즈는 "은퇴 고민부터, NC와 계약까지. 이 모든 일이 2013년 며칠 사이에 일어났습니다. 제가 이렇게 한 나라와 빠르게 사랑에 빠질 줄은 몰랐습니다. 확실히 KBO에서 경기 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을지 전혀 몰랐습니다. 여러분들이 응원할 모든 이유를 위해 정말 최선을 다해 훈련했습니다"라고 한국과의 남다른 인연을 회상했다.
이어 테임즈는 "저와 다이노스를 포용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어떤 KBO팀을 응원하시든 저는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 저는 자주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고, 저를 보면 주저하지 말고 인사해주세요!!"라며 유쾌한 작별인사를 전했다. 테임즈의 SNS에는 "NC 팬으로서 당신이 있어서 행복했다", "절대 못 잊어 테임즈", "테임즈는 전설이다" 등 한국팬들의 응원 메시지가 쏟아지고 있다.
테임즈의 야구인생 바꾼 KBO리그 선택
테임즈의 야구인생은 KBO리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6년생 테임즈는 2008년 신인드래프트 7라운드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지명되며 프로경력을 시작했고 메이저리그에는 2011년에 데뷔했다. 빅리그 1기는 토론토와 시애틀 매리너스에게 2시즌간 181경기 타율 2할 5푼 21홈런 62타점으로 기대에 비하면 그리 성공한 편은 아니었고 마이너리그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와중에 테임즈는 2014년 당시 신생팀인 NC 다이노스의 제안을 받고 한국으로 눈길을 돌리게 됐다. 당시만 해도 비록 주전급은 아니지만 그래도 40인 로스터 안에 드는 데다 아직 20대에 불과했던 빅리거의 한국행은 이례적인 사건이었다. 당시 테임즈가 마이너와 메이저를 오가는 생활과 개인사 등으로 많이 지쳐있었고, 이전까지는 한국야구를 전혀 알지 못했던 테임즈가 NC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다소 즉흥적으로 한국행을 결정했다는 뒷이야기도 있다.
이후 테임즈가 KBO리그에서 남긴 업적은 기대를 훨씬 뛰어넘었다. 2016년까지 NC의 유니폼을 입고 단 3시즌 만에 말 그대로 KBO리그를 평정하며 역대 최고의 외국인 타자로 군림했다. 테임즈는 KBO리그에서 통산 390경기 124홈런 382타점 64도루의 성적을 남겼다. 통산 타율은 .349 출루율 .451 장타율 .721, OPS 1.172였고, 이는 1000타석 이상 소화한 역대 타자 중 모두 1위에 해당한다.
절정은 역시 2015년이었다. 테임즈는 KBO리그에서 전무후무한 40홈런-4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시즌 전체 성적은 타율 .381 47홈런 140타점, 130득점, 출루율 .498 장타율 .790으로 그야말로 야구 만화나 게임에서나 볼 법한 기록을 남겼다.
테임즈는 타율-득점-장타율- 출루율 네 부문에서 리그 정상에 올랐다. 또한 평생 한 번 달성하기도 힘든 사이클링 히트를 올시즌에만 두 번이나 기록했다. 역대 단일 시즌 기준으로도 타율 4위, 출루율 2위, 장타율 1위, OPS 1위(1.288), WAR 2위를 기록하며 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즌'을 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해 정규리그 MVP도 당연히 테임즈의 몫이었다.
여기에 테임즈가 남긴 또다른 특별한 역사는, 외국인 선수가 KBO리그에서 빅리그로 다시 '금의환향'하는 모범 선례를 개척했다는 것이다. 이전까지만해도 KBO리그행은 마이너리거나 전성기가 지난 베테랑들이 선수생활을 이어가기 위한 차선책이나 돈벌이 정도로만 여겨졌다.
테임즈는 젊은 나이에 KBO리그를 거치며 기량이 더 향상되어 빅리그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그리고 이는 외국인 선수들만이 아니라 빅리그 도전을 꿈꾸는 국내 선수들에게도 좋은 자극이 됐다. 테임즈는 2017년 밀워키 브루어스와 계약하며 MLB에 화려하게 복귀했다. 다소 굴곡은 있었지만 빅리그 복귀 첫해 꾸준히 주전으로 활약하며 31개의 홈런 OPS .877로 연착륙에 성공했다.
한국으로 오기 전 빅리그 1기 시절만 해도 통산 홈런이 23개에 그쳤던 테임즈는 2기에서는 2020시즌까지 총 73개의 홈런을 때려냈고 20홈런 이상을 두 시즌이나 기록하며 KBO리그에서의 성적이 거품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했다. 테임즈는 2020년 워싱턴 내셔널스를 끝으로 MLB 경력을 마무리했고 1, 2기를 합쳐 통산 605경기에서 타율 .241 출루율 .325 장타율 .467 96홈런 235타점으로 나름의 족적을 남겼다.
테임즈는 메이저리그를 떠나 2021시즌에는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기도 했으나 하필 데뷔 경기에서 아킬레스건이 파열되며 시즌 아웃되는 불운을 겪었다. 지난시즌에는 고향인 산 호세에서 가까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계약했지만 트리플A에서 잠시 뛴 후 5월 방출됐다. 테임즈는 수술과 재활을 거치며 재기를 위해 노력했고, KBO리그와 친정인 NC 복귀설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결국 새로운 소속팀을 구하지 못하고 은퇴를 결정했다.
경기매너와 선행까지... '개념' 외국인 선수
테임즈는 걸출한 실력 못지않게 유쾌한 성격과 경기매너로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빅리거 출신 외국인 선수들은 자존감이 넘쳐서 종종 교만하거나 자기관리에 소홀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테임즈는 이런 선입견이 무색하게 국내 동료들과 코칭스태프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했고 경기장 안팎에서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노력파로 인정받았다.
최고의 시즌을 보내며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2015년에는 경기시작 전 마산 구장을 방문한 마크 리퍼트 미국대사와의 만남을 거절하며 "경기시작 전에 사람을 만나지 않는 것은 나만의 루틴이다. 야구에 있어서 나도 대사(Ambassador)와 같다. 미국 대통령이 온다고 해도 나는 훈련을 할 것"이라는 어록을 남기며 투철한 프로의식을 보여주기도 했다.
KBO리그 진출 이후 벌크업에 성공하며 프로레슬러를 연상시키는 우람한 팔 근육, 특유의 풍성한 턱수염은 테임즈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홈런을 치고 나면 동료들이 턱수염을 잡아당기는 특유의 세리머니로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경기 외적으로는 외국인 선수임에도 야구는 물론 지역 소외 아동을 돕는 선행이나 국내의 사건사고에 SNS 추모글을 올리는 등의 개념 행동으로 팬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한국을 떠난 이후에도 KBO리그 개막전에서 객원 해설로 초빙되거나, <복면가왕> 등 국내 예능 프로그램에 깜짝 출연하는 등 유쾌한 쇼맨십으로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이처럼 테임즈는 야구에 관한 본인의 꾸준한 노력-한국문화와 정서에 대한 유연한 적응 등이 뒷받침되며 다른 외국인 선수들보다 더 큰 업적을 남길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국내 팬들에게 좋은 기억을 남겼다.
물론 테임즈에게도 빛과 그림자가 존재했다. 한국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16년에는 음주운전이 적발되며 야구인생의 가장 큰 오점을 남겼다. 메이저리그로 복귀한 이후에는 어느 정도의 성적을 남기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KBO리그에서만큼의 폭발력이나 꾸준함을 재현하지는 못하며 어쩔 수 없는 리그 수준차를 드러내는 '전투력 판독기'가 되었다는 아쉬운 평가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임즈와 한국의 인연은 서로에게 윈윈이었다고 할 만하다. 테임즈에게 KBO리그에서의 3년은 야구인생에 있어서 일대의 전환점이 된 탁월한 선택이었다. 한국야구 역시 테임즈의 재능을 십분 활용하여 리그 역사에 빛나는 장면들을 만들었고, 이후의 외국인 선수들에게는 '여기서 잘하면 빅리그로 다시 올라갈수 있다'는 선례를 남기며 KBO리그의 위상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 테임즈는 이제 유니폼을 벗었지만 역사는 그를 한국야구를 빛낸 위대한 '외국인 레전드'로 기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