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SG 외국인 실무를 담당하는 남윤성 스카우트는 2022년 2월 미국으로 향했다. 이미 2022년을 함께 할 외국인 라인업은 완성됐지만, 추후 새로운 외국인 선수들을 대비한 리스트업에 나서야 했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스프링트레이닝, 그리고 시범경기를 보며 좋은 선수들을 꼼꼼하게 눈에 담았다.
안타를 치거나 화려한 기량을 보여주는 선수들도 있었지만, 남 스카우트의 눈에 유독 들어오는 선수가 있었다. 헛스윙을 하는 것을 본 뒤였다. 헛스윙은 대개 타자에게 최악의 결과지만, 남 스카우트는 그 헛스윙과 이후 대처에서 가능성을 봤다. 남 스카우트는 “2022년 시범경기 당시 이 선수의 경기를 세 번 정도 봤다. 상대가 시속 150㎞ 이상을 던지는 투수인데 헛스윙을 해도 자기 스윙을 하는 게 인상이 깊었다”고 떠올렸다.
상대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성공했고 올 시즌을 앞두고 애리조나와 4년 총액 8000만 달러에 계약한 좌완 에두아르도 로드리게스였다. 이 선수는 헛스윙을 하면서도 로드리게스의 변화구를 끝내 공략해 안타를 만들어냈다. 남 스카우트는 “그전까지는 전형적인 수비형 선수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변화구 대처에서 적응력과 상황 대처 능력이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결국 이 선수는 2023년 시즌을 앞두고 SSG 유니폼을 입는다. 기예르모 에레디아(33)가 그 사연의 주인공이다.
쿠바 출신의 에레디아는 2016년 시애틀에서 메이저리그에 데뷔했고, 이후 탬파베이, 피츠버그, 뉴욕 메츠, 애틀랜타를 거치며 메이저리그 총 7시즌에 뛰었다. 591경기에 나가 통산 타율 0.231, 27홈런, 114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656을 기록했다. 사실 공격 성적은 그렇게 도드라지지 않았다. 대신 경기 막판 투입시킬 수 있을 정도의 신뢰를 받는 수비력은 가지고 있었다. 남 스카우트를 비롯한 SSG 구단이 그를 당초 수비형 선수로 판단했던 것은 이유가 있는 셈이다.
에레디아의 전임자가 비슷한 유형의 외야수인 후안 라가레스라는 점에서도 의외의 선택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라가레스는 2022년 대체 외국인 선수로 합류해 49경기에서 타율 0.315를 기록했다. 홈런도 6개를 쳤다. 삼진 대비 볼넷 개수도 많았다. 스타일이 비슷하다면 KBO리그에 적응한 라가레스를 그냥 계속 쓰는 게 낫지 않느냐는 시각도 적지 않았던 셈이다. 하지만 SSG는 에레디아가 공‧수 모두에서 라가레스보다 더 낫다는 확신 속에 계약을 진행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에레디아는 KBO리그 무대에 잘 적응하며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남겼다. 시즌 122경기에서 타율 0.323, 12홈런, 76타점, 12도루, OPS 0.846을 기록했다. 시즌 막판 부상이 머리가 아팠을 뿐 전체적인 기량은 잘 유지했다. 꾸준하게 활약하며 SSG의 중심타선을 지켰다. 팀 내에서는 최정 다음의 공격 생산력이었다.
장타에 비해 상대적으로 정확도가 떨어지는 게 SSG 타선의 오랜 약점이었는데 그런 약점을 메워줬다는 점은 더 큰 희소가치가 있었다. 수비도 좋았다. 2023년 KBO 좌익수 부문 수비상 수상자가 에레디아였다. 기록은 물론 함께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에게도 공히 인정을 받은 결과였다.
그런 에레디아는 올 시즌을 앞두고 SSG와 재계약하며 다시 한국에 돌아온다. 에레디아는 계약금 15만 달러, 연봉 115만 달러, 인센티브 20만 달러 등 총액 150만 달러에 계약했다. 재계약 과정에서 금액이 다소 맞지 않아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결국은 에레디아는 다시 SSG의 손을 잡았고 SSG도 비교적 후한 대접을 해줬다는 평가다. 경기장 밖에는 유쾌하면서도 진중하고, 경기장 안에 들어오면 최선을 다해 뛰는 성실한 태도 또한 좋은 점수를 얻었다.
에레디아의 어깨는 2024년 더 무거워진다. SSG의 주축 타자들은 나이를 한 살씩 더 먹었다. 팀 야수들의 전체적인 평균 연령도 높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개 나이는 선수들의 몸을 짓누르기 마련이다. 여기에 타선에 특별한 보강이 있다고 할 수는 없다. 기대를 거는 젊은 선수들이야 있지만 이들은 상수가 아니다. 에레디아가 지난해 이상의 성적으로 팀 타선을 지탱해야 팀의 숨구멍도 트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