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스포츠뉴스 수원, 김지수 기자) KT 위즈 간판타자 강백호의 포수 포지션 도전은 선수의 미래 가치 향상뿐 아니라 팀 전체의 전력 극대화를 위한 포석이었다. 당장은 어렵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선발 포수' 강백호의 모습도 충분히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KT는 4일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열린 2024 신한 SOL Bank KBO리그 KIA 타이거즈와의 시즌 3차전에서 3-6으로 졌다. 지난 3일 1-5로 무릎을 꿇은 데 이어 이틀 연속 패전의 쓴맛을 보고 주중 3연전을 루징 시리즈로 마쳤다.
결과는 아쉬웠지만 수확이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 '포수' 강백호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의미 있는 경험을 쌓게 했다. 9이닝 내내 안방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더라도 경기 상황에 따라 안방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입증했다.
강백호는 이날 4번 지명타자로 선발출전해 4타수 4안타 1홈런 2타점 2득점으로 맹타를 휘둘렀다. 홀로 KT 타선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KIA 마운드를 괴롭혔다.
강백호는 KT가 0-3으로 뒤진 2회말 선두타자로 나와 추격의 불씨를 당겼다. KIA 선발투수 이의리를 상대로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를 쳐내며 직접 득점 찬스를 만들었다.
KT는 강백호의 2회말 선두타자 2루타로 반격 기회를 잡았다. 박병호가 3루 땅볼로 물러났지만 계속된 1사 2루에서 김민혁의 1타점 적시타로 한 점을 만회할 수 있었다.
강백호는 KT가 1-3으로 끌려가던 4회말 두 번째 타석에서 또 한 번 힘차게 방망이를 돌렸다. 이의리의 초구를 공략해 우측 담장을 넘어가는 비거리 135m짜리 대형 솔로 홈런을 쏘아 올렸다. 지난달 27일 수원 두산 베어스전에서 2024 시즌 마수걸이 홈런을 신고한 뒤 7경기 만에 짜릿한 손맛을 봤다.
강백호의 활약은 계속됐다. KT가 2-3으로 추격하던 5회말 2사 1루에서 유격수 방면 내야 안타로 출루했다. KIA 유격수 박찬호가 끝까지 강백호의 타구를 쫓았지만 외야로 빠져나가는 걸 가까스로 막았을 뿐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다.
강백호는 KT가 2-6으로 뒤진 7회말 네 번째 타석에서도 안타를 생산했다. 2사 1·3루에서 깨끗한 우전 안타로 3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였다. 이날 KT가 뽑은 4점을 사실상 혼자 책임졌다.
KT 벤치는 3-6으로 열세인 8회초 수비 시작과 동시에 강백호의 포지션을 지명타자에서 포수로 변경했다. KT는 선발 포수였던 장성우가 5회초 수비 과정에서 KIA 박찬호의 파울 타구에 우측 전완근을 맞고 김준태로 교체된 상태였다. 김준태가 무난하게 안방을 지키고 있던 상황에서 과감하게 강백호에게 마스크를 쓰게 했다. 엔트리에 더는 남아 있는 포수가 없었기 때문에 강백호에게 9회초 수비까지 맡긴다는 계산이었다.
강백호는 8회초 베테랑 우완 주권과 호흡을 맞췄다. 김선빈을 삼진, 서건창을 좌익수 뜬공, 김태군을 3루수 땅볼로 처리하고 삼자범퇴 이닝을 만들었다.
강백호는 9회초 언더핸드 이선우와 배터리를 이뤘다. 선두타자 최원준을 유격수 땅볼로 잡아냈지만 1사 후 박찬호가 좌전 안타로 출루했다.
KIA는 포수 수비가 익숙지 않은 강백호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발빠른 박찬호가 김도영의 타석 때 과감하게 2루 도루를 시도했다. 강백호가 재빠르게 2루에 공을 뿌렸지만 송구가 크게 빗나가며 외야로 흘러가는 실책이 됐다. 박찬호가 3루까지 진루하면서 KT는 1사 3루 위기에 몰렸다.
강백호는 당황하지 않고 이선우와 함께 후속 타자들과 승부를 이어갔다. 이선우가 김도영을 3루 땅볼, 소크라테스를 1루 땅볼로 처리하면서 이닝을 마쳤다.
이강철 KT 감독은 KT의 수비 종료 후 더그아웃에서 강백호를 불러 잠시 대화를 나눴다. 강백호의 포수 수비, 리드에 대해 조언하는 듯 보였다.
이강철 감독은 이날 경기 전 강백호를 꾸준히 1군 경기에 포수로 출전시킬 계획이 있음을 내비쳤다. 올해보다는 내년, 내후년을 바라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강백호가 포수로 뛸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겠다는 입장이다.
이강철 감독은 "당장 강백호를 선발포수로 기용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장기적인 관점에서 포수로 나서는 것도 준비시키고 있다"며 "내년, 내후년까지 멀리 보고 포수로 차근차근 훈련을 시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또 "강백호가 (선발) 포수로 뛸 수 있다면 지명타자에 다른 야수를 하나 더 쓸 수 있다. 게임 운영이 더 수월해진다"며 "장성우도 힘들 때 포수 대신 지명타자로 쓰면서 체력 안배를 해주는 것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강백호는 지난 2018년 서울고를 졸업하고 KT에 입단하며 프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데뷔 시즌부터 138경기, 타율 0.290(527타수 153안타) 29홈런 84타점 OPS 0.880으로 맹타를 휘두르며 신인왕을 차지했다.
강백호는 2019 시즌에도 116경기 타율 0.336(438타수 147안타) 13홈런 65타점 OPS 0.911로 맹활약을 펼쳤다. 2년차 징크스를 비웃듯 리그 최고의 좌타 거포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
2020 시즌에는 129경기 타율 0.330(500타수 165안타) 23홈런 89타점 OPS 0.955로 펄펄 날았다. 2021 시즌 타율 0.347(516타수 179안타) 16홈런 102타점 OPS 0.971로 주축 타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KT의 창단 첫 통합우승 주역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강백호는 2022 시즌 부상 여파 속에 62경기 타율 0.245(237타수 58안타) 6홈런 29타점 OPS 0.683, 2023 시즌 71경기 타율 0.265(238타수 63안타) 8홈런 39타점 OPS 0.763으로 주춤했다.
최근 2년 동안 부침을 겪었던 타격 못지않게 수비 포지션에서도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다. 강백호는 프로 데뷔 직후 첫 2년 동안 우익수로 주로 나섰다. 아마추어 시절까지 포수, 외야수는 물론 투수까지 겸엄했지만 프로에서는 강점인 타격을 더 살리기 위해 외야수로 자리 잡았다.
다만 강백호의 외야 수비 능력은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20 시즌을 앞두고 이강철 감독이 강백호의 포지션을 1루로 이동시킨 뒤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지만 1루 수비 역시 확실하게 안정감을 주지 못했던 게 사실이었다.
강백호는 이 때문에 2019 WBSC 프리미어12, 2021년 도쿄 올림픽,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까지 지명타자, 대타 역할로 활용도가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KT가 2022 시즌을 앞두고 FA 시장에서 '국가대표 1루수' 박병호를 영입하면서 강백호는 한 번 더 포지션을 1루에서 외야로 변경했다. 2023 시즌부터 1루 미트가 아닌 외야수 글러브를 꼈다.
하지만 강백호는 2024 시즌에도 지명타자로 나서는 빈도가 훨씬 높았다. KT는 배정대라는 리그 최정상급 수비력을 자랑하는 중견수를 보유하고 있지만 좌익수, 우익수는 수비 범위가 넓은 선수가 많지 않다. 강백호를 쉽게 우익수로 선발출전 시키기 어려웠던 배경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