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축구 경기가 열리는 그라운드의 잔디가 경기 질을 떨어뜨리고 있다. 매년 여름철이면 구멍이 숭숭 패인 잔디에선 공이 이상하게 튄다. 골이나 마찬가지라는 페널티킥이 잔디 때문에 엉뚱한 곳을 향하는 장면도 나온다. 프로축구연맹이 최근 수년 동안 잔디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대면서 개선 방향이 잡히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잔디 관리에 공을 들일 때 어떤 효과가 나오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다. 올해 장마가 역대 최장기간인 54일에 달했지만 잔디는 패인 곳 없이 선명학 녹색을 자랑한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3년전 잔디 상태 때문에 국정감사에 소환되기도 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은 2018년 잔디 아래에 배관을 깔아 온수와 냉수를 순환시키는 ‘히팅 앤 쿨링 시스템’을 실험 도입해 신선한 충격을 줬다. 심성호 서울월드컵경기장운영처 조경팀장은 “아쉽게도 히팅 앤 쿨링 시스템은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아 설치 확대는 중단한 상태”라면서 “하이브리드 잔디가 더 낫다는 판단 아래 내년 11월 설치를 목표로 외부에서 잔디를 계약 재배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의 천연잔디에 인조잔디를 골조처럼 활용하는 하이브리드 잔디는 유럽에서 먼저 인정을 받았다. 선수들이 경기를 뛸 때마다 파이고 망가지는 천연잔디와 비교하면 회복과 보수도 상대적으로 쉽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로축구연맹은 하이브리드 잔디 컨설팅 및 판매 사업까지 구상하고 있는 상태다.국내에선 한국축구대표팀 선수들이 훈련하는 파주트레이닝센터에 유일하게 도입돼 국내 기후에 알맞는 잔디 품종을 실험하고 있다. 신동수 대한축구협회 파주트레이닝센터관리팀 대리는 “선수들도 조금 미끄럽다는 점 외에는 나쁘지 않다고 말해 이 부분을 개량하는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 잔디를 새롭게 깔은 울산문수구장이 도입을 추진하는 인공 채광기도 또다른 문제 해결 방법이다. 경기장을 둘러싼 거대한 지붕이 만들어낸 그림자는 잔디가 자라는데 방해가 되는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은 채광기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 채광기가 대당 2억 5000만원이 넘는 고가라는 점이 도입 확대의 걸림돌이지만 K리그 구단들은 하이브리드 잔디와 함께 채광기 병행 도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다만 잔디 전문가들은 하이브리드 잔디도, 채광기도 잔디를 살리는 완벽한 해결책은 아니라고 전했다. 잔디가 회복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도록 경기장 사용에 있어 정책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잔디 부실로 비판을 받은 경기장들은 뒤늦게 훈련 용도로 전용된 사실이 프로축구연맹 조사에서 드러났다. 한국의 기후가 계속 바뀌는 것을 감안해 잔디 품종의 변화도 준비해야 한다. 일본에선 한지형 잔디 대신 동남아시아 품종인 난지형 잔디가 쓰이고 있다. 심 팀장은 “기후가 계속 바뀐다면 결국 잔디가 바뀌어야 한다. 다각도에서 이 문제를 모두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