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정적인 농구, 무늬만 트랜지션 게임?
지난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던 전주 KCC 이지스는 올 시즌 역시 우승을 정조준하고 있다. 과포화 가드진, 양과 질적으로 모두 부족한 포워드-빅맨진 등 전력상 아쉬운 점 투성이지만 팀내 노장이 많다는 점에서 그들의 기량이 남아있을 때 승부를 보는게 맞다. 이른바 원나우 모드 인 것이다. 우승권 팀들과 경쟁하기에 전력에서는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앞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팀내 최고 테크니션 이정현(34·191㎝)이 적지 않은 나이와 잔부상 등으로 예전의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실질적인 KCC 원투펀치는 라건아(32·199㎝)와 송교창(25·201cm)이라 할 수 있다. 둘 다 신장대비 기동성이 좋아 달리는 농구에서 강점을 발휘한다. 테크닉적인 면에서 월등하지 않음에도 상대 수비진이 어려워하는 이유다.
KCC 입장에서 올 시즌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경기력은 라건아, 송교창의 장점이 빛을 발하는 가운데 여러가지 시너지 효과가 더불어 파생되는 것이다. 둘이 활발하게 움직이며 트랜지션 게임에서 위력을 발휘하고 유현준(24·178㎝)이 조율을 담당하는 조타수 역할을 한다.
거기에 상대 수비가 라건아, 송교창 등에 집중되었을 때 외곽에서 전준범(30·194㎝), 이근휘(히시게 벌드수흐·23·187cm) 등 저격수들이 한방씩 터트려준다. 이정현같은 경우 테크닉과 노련미는 여전하지만 체력과 활동력이 떨어지는 만큼 출전시간을 적절히 조절하며 '특급 조커'로서 활용하는 쪽이 적절할 것이다는 의견이 많다.
경기 초반 이정현은 활동력 문제 등으로 상대 수비진에 고전할 수 있지만 이른바 기술적인 클래스는 여전하다. 체력이 떨어지는 후반에는 본인의 단점을 상쇄한 채 장점을 한껏 발휘하는플레이가 여전히 가능한 선수다. 그런 경기력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질 때 전창진 감독이 추구하는 모션오펜스, 트랜지션 게임, 스페이싱 농구가 완성되는 것이다.
전창진 농구에 가장 필요한 것! 에너지 레벨
▲ 전주 KCC 입장에서는 송교창과 정창영(사진 오른쪽)의 의존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 |
ⓒ 전주 KCC |
일단 라건아, 이정현, 송교창, 전준범 등 선수들의 이름값만 놓고 봤을 때 저 멤버로 충분히 이상적인 전창진표 농구가 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게임이 아니다. 각자의 전성기가 다르고 무엇보다 조합이 되었을 때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지난 시즌에는 이러한 부분이 기대만큼은 잘 되지 않았다. 이정현은 좋지 않은 몸 상태, 노쇠화 등에도 불구하고 한창 좋았을 때처럼 플레이하려다 보니 예전 만큼의 효율성이 나오지 않았다. 더불어 팀내 단신 선수가 많음에도 활발하게 공수에서 뛸 선수가 부족했고, 믿음직한 외곽슈터 조차 없었다. 팀 색깔은 나왔는데 구성원에서 부족한 요소가 너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배경에는 타일러 데이비스(24·208㎝)라는 클래식 센터가 골밑을 든든하게 지켜주고 라건아가 2옵션으로 부담 없이 뛰어다닌 영향이 크다. 높이가 낮은 KCC에서 데이비스는 혼자 골밑을 지켜내며 적어도 포스트 싸움에서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데이비스 효과로 인해 KCC 선수들은 높이의 불안감을 딛고 다수의 핸들러를 앞세워 무한 투맨게임을 거듭할 수 있었다.
아쉽게도 올 시즌 라건아와 호흡을 맞출 라티비우스 윌리엄스(32·200㎝)는 데이비스만큼의 위력을 보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시즌 우승팀 안양 KGC에서 2번째 외인 옵션으로 뛰며 성실한 모습을 보이기는 했으나 에이스급 외인과는 거리가 멀다. 갑자기 각성하지 않는 이상 라건아 이상의 경기력을 보이기는 힘들어 보인다.
결국 지난 시즌과 비교해 골밑의 위력은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오리온이 세르비아 국가대표 출신 미로슬라브 라둘리차(31·213cm)를 데려오는 등 경쟁팀들의 외인 수준이 더욱 높아진 것을 감안 했을 때 KCC 외인 경쟁력은 한없이 불안해 보인다. 설상가상으로 토종 빅맨자원 역시 10개 구단 최하위 수준이다. 높이가 낮은 가운데 가드만 넘쳐난다.
낮은 높이를 억지로 올릴 수는 없다. KCC처럼 높이에서 아쉬움이 있는 팀은 보통 달리는 농구를 펼친다. 상대 장신자들이 반응하기 전에 빠르고 많이 공수 전환을 가져가는게 키포인트다. 전감독 역시 이를 잘 알고 있고, 앞서 언급한 데로 모션오펜스, 트랜지션 게임, 스페이싱 농구를 추구하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농구를 펼치기 위해서는 팀 전체적인 활동량이 높아야 한다는 사실이다. 아쉽게도 지난 시즌에는 그러한 부분에서 아쉬움이 컸다. 노장 이정현은 이제 젊은 시절같이 플레이하기는 어렵고 유현준같은 경우 나이는 어리지만 스피드 등에서 경쟁력이 높지 않다. 김지완, 유병훈은 시즌 내내 잔 부상을 달고 살았던지라 꾸준히 경기만 출전해줘도 감사할 지경이다.
그나마 라건아, 송교창이 많이 뛰어주고 정창영이 연결고리 역할을 잘해주며 팀 전체적으로 힘겹게 에너지를 얻어갈 수 있었다는 평가다. 특별한 장기가 없는 무명선수였던 이진욱이 중용되었던 배경에는 그나마 열심히 뛴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다. 아쉽게도 이진욱은 말 그대로 열심히 뛰기만 했다.
올시즌 역시 특별한 변화 없이 시작한다면 지난 시즌보다 더 어려울 수 있다. 송교창의 몸 상태가 좋지 못하고 정창영도 노장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다른 선수들이 함께 활동량을 높혀줄 필요가 있다.
현재로서는 올 시즌 1라운드 9순위로 지명한 루키 김동현(19·189.8cm)을 비롯해 이근휘, 곽정훈(23·187.7cm) 등 젊고 잘 뛸 수 있는 선수들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더불어 유현준, 이정현, 전준범 동시 출전 등 아예 수비를 포기한듯한 라인업에 대한 불안의 목소리도 커져가는 분위기다.
과연 지난 시즌 아슬아슬한 6강 후보라는 혹평을 딛고 정규리그 1위라는 기적을 써낸 KCC는 올 시즌에도 깜짝 놀랄 미라클 행보를 이어갈 수 있을까. 장신들이 우글거리는 리그에서 단신 군단 KCC가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