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도중 한화에서 은퇴한 이성열은 전력분석원으로 새 인생을 시작할 참이었다. 구단의 제안으로 유니폼을 벗자마자 서산으로 두 달 동안 출근해 관련 업무를 배우고 있었다. 그러나 시즌 종료 후 날벼락 같은 통보를 받았다. 정식 계약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졸지에 구단을 떠나게 된 이성열이 느낀 배신감은 크다. 그는 지난 8월 구단의 권유로 은퇴를 결정했다. 19년 동안 4개 팀 유니폼을 입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긴 7년을 뛰었고, 나름대로 강한 임팩트를 남기고 현역 생활의 마지막을 보낸 팀이기에 애착이 컸다. 경기 도중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을 통한 갑작스러운 통보에 당황했지만 한화에 남아 후배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고심 끝에 받아들였다. 이성열은 "현역 연장에 미련도 있었지만 4, 5개월을 기다려 다른 팀을 알아본다는 것도 구단에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다.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해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전력분석원 제안을 주셔서 시작했던 것"이라면서 "그런데 시즌이 끝나고 나서 전력분석 자리도, 코치 자리도 티오가 없으니 힘들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성열은 "물론 배우고 있는 과정이었지, 정식 계약을 보장받고 시작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더 이상 할 말은 없다"면서 "구단도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민철 단장님과도 좋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며 앙금은 남아 있지 않다고 했다. 한편으론 짧은 기간이나마 경험을 쌓게 해준 데 대해 고마운 마음도 있다. 이성열은 "선수 시절엔 전력분석팀이 주는 자료를 대수롭지 않게 받기만 했었는데 직접 일을 해 보면서 그들의 노고를 알 수 있었고, 팀에 얼마나 필요한 분들인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이성열은 대기만성형 선수로 꼽힌다. 효천고를 졸업하고 2003년 LG에서 프로에 데뷔한 그는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지만 꽃을 피우지 못했다. 이후 2008년 두산, 2012년 넥센(현 키움)을 거쳐 2015년부터 한화에서 7시즌을 보냈다. 특히 2018년엔 주장으로 팀을 이끌며 타율 0.295에 34홈런, 102타점으로 맹활약해 팀의 가을야구 진출에 앞장섰다. 현역 마지막 모습도 강렬했다. 지난 8월 14일 대전 NC전에 선발 출전해 3회말 만루홈런을 터뜨린 뒤 다음 타석 때 교체됐다. 이성열은 "만루홈런을 치고 은퇴한 선수는 나밖에 없을 것"이라고 웃으며 "좋은 추억을 갖고 은퇴하게 된 건 행운"이라고 했다.
이성열은 "데뷔 초반 자리를 잡지 못하는 나를 보고 주변에서 오래 못할 거라 했는데 19년이나 뛰었다"면서 "3번의 트레이드를 통해 좀더 성숙해질 수 있었다. 팀을 옮길 때마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면서 그 속에서 기회를 만들어갔다"고 돌아봤다. 그는 "4개 팀을 거치며 좋은 감독님들과 코치님들을 만났고, 다양한 2군 시스템도 경험했다. 한화에선 비록 나오게 됐지만 불러주는 팀이 있다면 시행착오를 거치며 터득한 경험과 노하우를 후배들을 위해 쓰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