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입단 첫 시즌부터 3할 타율(.324)을 기록하며 자신의 앞에 붙어 있던 '이종범의 아들'이라는 꼬리표를 뗀 이정후(24·키움)는 2021년 시즌을 앞두고 하나의 목표를 세웠다. 타격 정확도는 이미 인정을 받은 터였다. 대개 많은 교타자들이 그렇듯, 이제는 장타를 더 늘리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정후는 "2021년 시즌 준비하면서 캠프 때부터 접근을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더 많은 홈런을 치려고 캠프 때부터 했는데 시즌 초에 안 좋아 밸런스 찾는 데 애를 먹었다"고 솔직하게 인정했다. 타율을 크게 희생하면서 홈런 개수를 늘리는 건 사실 큰 의미가 없었다. 오히려 이정후의 타격 정체성을 훼손시킬 수 있는 일이었다. 당장 팀 성적을 생각해야 했다.
이정후는 다시 방향을 조금 바꿨고, 타율 0.360으로 시즌을 마치며 타격왕 타이틀을 달았다. 그런데 잠시 잊고 있었던 홈런이 시즌 막판 갑자기 감으로 찾아오기 시작했다. 이정후는 "작년 10월에 시즌 종료 한 달 남기고, 10월 달부터 홈런 3개를 쳤다. 작년 10월에는 2020년 10개 넘게 쳤을 때(15개)의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팀의 포스트시즌은 아쉽게 끝났지만, 이정후는 그 짜릿한 감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잊고 싶지도 않았다. 보통 시즌이 끝나면 선수들은 한 달 정도 휴식과 체력 훈련 위주로 프로그램을 짠다. 훈련이 필요해 마무리캠프에 가야 하는 선수가 아니라면 기술 훈련보다는 몸 관리에 신경을 쓴다. 그러나 이정후는 바로 기술 훈련에 돌입했다. 간신히 찾은 그 장타의 감을 유지하고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이정후는 "(지난 시즌에는) 안타에 조금 더 치중하는 배팅을 했다고 하면, 작년 10월부터 홈런 3개 쳤을 때 안타도 치면서 타구에 힘도 실린다는 생각을 받았다"면서 "그 시기에 했던 스윙 메커니즘을 잊어버리지 않도록 준비를 조금 일찍 시작했다. 11월 20일 정도부터 훈련을 바로 시작했다"고 했다. 천재는 벽을 만났고, 벽을 깰 실마리를 찾았으며, 그 실마리에 욕심을 내고 있었다.
그 결과는 2022년 시즌 초반의 좋은 홈런 페이스다. 이정후는 25일까지 시즌 20경기에서 타율 0.313, 4홈런, 18타점의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타율이 개인 통산(.340)에 비해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올해 역대급 투고타저의 흐름, 그리고 아주 큰 슬럼프 없이 꾸준하게 안타를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별로 걱정할 만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3할 이상의 타율에 홈런까지 같이 터지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이정후는 굳이 홈런이라는 단어에 연연하지는 않겠다고 했다. 다만 강한 타구를 날리면 날릴수록 공이 담장을 넘길 확률이 높다는 건 알고 있다. 그 과정을 잘 지키면 홈런은 자연스레 따라오지 않겠느냐는 생각이다.
이정후는 "홈런을 치랴고 준비했다기보다는 하드히트(타구속도 시속 153㎞ 이상의 타구) 비율을 많이 높이고 있다. 강한 타구가 많으면 얼마든지 좋은 타구가 나온다. 투수 공에 배트 중심에 정확하게 강하게 맞히려고 한다"면서 "홈런을 치려고 팔로스로우를 크게 한다는 건 없이 어떻게든 빠르게 공에 접근해서 공에 강하게 치자는 쪽으로 캠프 때부터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하드히트 비율이 높아지면 꼭 홈런이 아니더라도 안타는 물론, 2루타 이상의 장타도 늘어날 수 있다.
전체적인 성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살펴야 하지만, 그렇게 천재는 욕심을 만나서 더 진화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정후는 2023년 시즌이 끝나면 메이저리그 포스팅시스템(비공개경쟁입찰)에 도전할 자격을 얻는다. 이미 현재도 많은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이정후를 지켜보고 있고, 그의 타격 정확도에 대해서는 상당 부분 계산을 끝낸 상태다. 여기에 장타까지 포함된다면 본국으로 보낼 스카우팅 리포트를 바꿔야 한다. 몸값이 올라감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