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아티아 vs. 모로코
오늘 밤 12시 월드컵 3·4위전
[쇄담(瑣談) : 자질구레한 이야기]
크로아티아와 모로코가 17일 밤 12시(18일 0시) 2022 카타르 월드컵 3·4위 결정전에서 격돌한다. 앞서 준결승전에서 크로아티아는 아르헨티나에 0대3, 모로코는 프랑스에 0대2로 패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에 나선 크로아티아 선수단(위)과 모로코 선수단. /AFP연합뉴스·AP연합뉴스
이번 월드컵에서 양 팀 간의 두 번째 만남이다. 둘은 같은 F조 소속으로 조별리그 1차전에서 지난달 23일 한 차례 맞붙었다. 당시 득점 없이 0대0으로 비겼다. 이후 모로코가 F조 1위(2승1무·승점 7), 크로아티아가 2위(1승2무·승점 5)로 16강전에 안착했다.
누군가에게 월드컵 3·4위전은 ‘계륵(鷄肋)’ 같은 경기일 수 있다. 결승전 진출을 놓친,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진 두 팀이 별 의미 없이 공을 주고받는 그런 경기로 치부할 수도 있다. 실제로 3위(2700만 달러·약 354억원)와 4위(2500만 달러·약 328억원)가 받는 상금의 차이가 200만 달러밖에 되지 않는다. 열심히 뛰어도 크게 달라지는 게 없는 셈이다.
또 결승전이 열리는 루사일 스타디움(수용인원 8만8966명)에 반해 3·4위전은 상대적으로 작은 할리파 인터내셔널 스타디움(4만5857명)에서 열린다. 그만큼 주목도가 낮다는 뜻이다.
그래도 두 팀은 유종의 미를 노린다. 올림픽 시상대에서도 금메달 수상자보다 동메달 수상자의 입가가 더욱 환한 경우가 있다. 2연패(連敗)로 월드컵을 마무리하고 싶은 팀은 없다.
역대 월드컵 3·4위전을 바탕으로 몇 가지 경기 관전 포인트를 짚어본다.
3·4위전은 화끈한 골 축제?
3·4위전에선 항상 골이 터졌다.
월드컵은 1930년 초대 우루과이 대회로 시작됐지만, 3·4위전은 1934년부터 도입됐다. 1950 브라질 대회 땐 라운드 로빈 방식이 채택돼 결승전과 3·4위전이 공식적으론 없었지만, 결승 라운드 마지막 날이 사실상의 결승전과 3·4위전이었다.
1934년부터 2018년까지 열린 20개(1942·1946년 대회 미개최)의 3·4위전에서 총 77개의 골이 나왔다. 경기당 3.85골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중 1962 칠레 대회(칠레 1-0 유고슬라비아), 1970 멕시코 대회(서독 1-0 우루과이), 1974 서독 대회(폴란드 1-0 브라질) 때 3·4위전을 제외하곤 전부 다득점 경기였다. 한국이 나섰던 2002 한일 대회 3·4위전에서도 총 5골(튀르키예 3-2 한국)이 터졌다.
2006 독일 대회 땐 안방팀인 독일이 포르투갈을 3대1로 제쳤다.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회에서도 독일이 우루과이를 3대2로 눌렀다. 2014 브라질 대회에선 네덜란드가 홈팀 브라질을 3대0으로 완파했고, 2018 러시아 대회 땐 벨기에가 잉글랜드를 2대0으로 따돌렸다.
크로아티아는 조별리그부터 4강전까지 총 6경기에서 6골을 넣고 모로코는 5골에 그치는 등 두 팀은 여태까지 수비 위주의 전술을 선보였다. 그래서 이번 대회 ‘리턴 매치’ 격인 3·4위전에서 크로아티아와 모로코가 과연 공격적으로 나서 화끈한 난타전을 벌일지도 관심이다.
모로코가 11일 카타르 월드컵 8강전에서 예상을 뒤엎고 포르투갈을 1대0으로 꺾고 아프리카 국가 최초로 월드컵 4강 신화를 쓰자 모로코 국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와 환호했다. 사진은 모로코 수도 라바트에서 여성 축구팬이 남성의 목말을 탄 채 두 팔을 벌려 기뻐하는 모습. /AFP연합뉴스
모로코, 제 3대륙 출신 국가 최고 기록 세울까
월드컵 3·4위전은 2002년 전까진 유럽과 남아메리카(이하 남미) 국가들의 전유물이었다. 심지어 유고슬라비아와 소련 등 지금은 해체된 팀들도 출전국으로 이름을 남겼다.
2002년 당시 유럽과 남미가 아닌 ‘제 3대륙’ 출신 국가로 한국이 최초로 올랐다. 그러나 한국은 튀르키예에 2대3으로 지며 4위에 머물렀다. 튀르키예는 월드컵 출전에 관해선 유럽 지역의 예선에 참가해 유럽 국가로 분류된다.
북아메리카의 미국이 1930년 초대 월드컵에서 3위를 했지만, 이때 별도의 3·4위전은 열리지 않았다. 당시 준결승에서 진 팀들은 대회 누적 기록을 바탕으로 3·4위를 가렸다.
2002년 이후 20년 만에 다시 제 3대륙 출신 국가가 3·4위전에 진출했다. 이번 월드컵 최대 ‘다크 호스’로 꼽히는 모로코가 크로아티아를 뚫고 3위를 쟁취하며 역대 아프리카 및 제 3대륙 출신 국가 최고 기록을 작성할지도 관심사다.
한 크로아티아 축구팬이 지난 2일 크로아티아와 벨기에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크로아티아의 주장 루카 모드리치의 카드보드 컷을 들고 응원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크로아티아 모드리치의 ‘라스트 댄스’
크로아티아의 주장 루카 모드리치(37·레알 마드리드)는 한 해 동안 전 세계에서 최고 활약을 펼친 축구 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를 2018년에 수상했다. 당시 리오넬 메시(35·아르헨티나)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7·포르투갈)가 아닌 선수가 이 상을 받은 것은 무려 11년 만이었다. 한 시대를 지배했던 ‘메호 대전’을 그가 깬 것이다.
모드리치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도 주장 완장을 차고 크로아티아의 사상 첫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당시 크로아티아가 치른 7경기에 모두 출전해 총 694분을 뛰며 2골 1어시스트를 기록했고, 대회 최우수선수 격인 골든볼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크로아티아는 결승에서 프랑스에 2대4로 무릎을 꿇었다.
크로아티아의 주장 루카 모드리치가 지난 14일 아르헨티나와의 준결승전에서 0대3으로 패한 뒤 팬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번에 결승 진출은 무산됐지만, 모드리치는 그의 마지막 월드컵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고 싶어한다. 4년 뒤 41세가 되는 그는 이번 카타르 대회가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이다. 모드리치는 “마무리를 제대로 하고 싶다”며 “3위를 할 수 있도록 온 힘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모드리치는 이번 월드컵에서도 크로아티아가 치른 6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해 총 567분간 뛰며 건재를 과시했다.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다운 왕성한 활동량과 패스·조율 능력으로 팀을 이끌었다. 이미 그는 크로아티아 대표팀 역대 최다 출장 기록(161경기)을 갖고 있다. 2위인 다리요 스르나(은퇴·134경기)에 비해 압도적이다.
아직 모드리치는 이번 대회에서 골망을 흔들지 못했다. 크로아티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히는 모드리치가 그의 대표팀 162번째이자 마지막 월드컵 경기에서 골맛을 볼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