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강동훈 기자 = 박항서(65) 감독이 베트남과 길고 길었던 동행의 마침표를 찍은 가운데, 지난 5년 4개월의 여정을 되돌아보면서 심정을 밝혔다. 동시에 야인으로 돌아선 그는 향후 거취에 대해서도 암시했다.
박 감독은 17일 비대면으로 진행한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5년간 이끌었던 베트남과 마지막 동행을 마쳤다"며 "이별은 마음 아픈 일이지만,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이다. 베트남 축구가 더 발전하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이같이 말했다.
앞서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은 지난 16일 태국 빠툼타니주에 위치한 탐마삿 스타디움에서 열린 태국과의 2022 AFF(동남아시아축구연맹) 미쓰비시 일렉트릭컵 결승 2차전에서 0-1로 패해 1·2차전 합산 스코어 2-3으로 밀려 준우승에 그쳤다.
이 경기를 끝으로 베트남과 동행을 모두 마친 박 감독은 "준우승에 그쳤지만, 선수들은 최선을 다했다. 우승을 못 해서 아쉬움은 남지만,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에게 고맙다"며 "사실 이렇게 오랫동안 머무를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1년만 버티자고 한 게 어느덧 5년까지 왔다. 생각보다 더 긴 세월이었다"고 말했다.
베트남은 박 감독이 부임하고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실제 AFC(아시아축구연맹) U-23(23세 이하) 챔피언십 준우승(2018년)을 시작으로 AFF 스즈키컵 우승(2018년), 동남아시안게임 금메달(2019년·2021년) 등 역사에 남을 업적을 세웠다. FIFA(국제축구연맹) 랭킹 100위권 내 진입(96위)도 달성했다.
박 감독은 "타국에서 인정받기 위해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돌아보면 부족한 면도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어려움도 있었고, 비판하는 분들도 있었다"며 "그래도 대부분의 국민들이 지지해 줬기 때문에 5년이라는 세월을 보낼 수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나 선수들이다. 운동장에서 나한테 혼도 많이 났지만, '사랑방'이라고 할 수 있는 의무실에서 같이 뒹굴고 했던 순간들이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제 관심사는 베트남과의 동행을 마친 박 감독의 향후 거취에 쏠린다.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는 "이제 생각해야 봐야 한다. 가족들과 논의도 필요하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한국이나 베트남에서 감독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베트남과 한국에서는 감독을 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베트남에서는 대표팀 감독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다른 현장 감독을 맡을 생각이 없다"면서 "한국에는 저보다 훌륭한 후배들과 동료들이 더 많다. 5년을 떠나 있었기에 현장감도 떨어진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행정가를 맡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해외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데 행정가를 할 수 있겠나 싶다. 국내에서도 대한축구협회나 한국프로축구연맹에 들어갈 생각은 없다. 물론 저를 받아주지도 않겠지만 저도 생각이 없다"며 웃어 보였다.
다만 베트남이나 한국이 아닌 다른 아시아권 대표팀 감독직에 대해서는 가능성을 열어놨다. 박 감독은 "월드컵이라는 대회는 경험한 팀과 그렇지 않은 팀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는 카타르가 잘 보여줬다. 그만큼 경험이 중요하다"며 "부족하지만, 만약 불러주는 팀이 있다면 생각해 보겠다. 그래도 저를 불러주는 팀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끝으로 박 감독은 "조국인 대한민국 팬들과 국민 여러분께 너무 감사드린다. 베트남에서 일했지만, 한국인이라는 것 때문에 많은 응원과 격려를 받았다"며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했다. 지난 5년 동안 베트남과 박항서 응원해 주신 것에 감사드린다"며 기자회견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