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쉽게 생각해왔던 ‘재벌’들과는 다른 사람인 줄 알았다.
누구보다 소탈하고 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알며 마음이 열려 있는 사람이라 여겨졌다.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이 ‘용진이 형’이라는 이름으로 야구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유다.
정용진 SSG 랜더스 구단주가 우승 트로피를 들고 기뻐하고 있다. 사진=천정환 기자정 부회장은 팬들과 적극적으로 소통을 이어갔다.
팬들이 원하는 것이 있으면 꼭 이뤄주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SSG 야구단의 모든 것이 변해갔고 새로운 시도는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SSG 팬들은 다른 팀들과는 차원이 다른 구단주를 갖고 있다는 것이 큰 자랑이었다. 팬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구단 운영에 반영되는 걸 보고 환호했다.
앞으로도 이런 팬들과 구단주의 밀월 관계가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SSG가 야구로는 최고가 되기 어려울 수 있어도 구단주 만큼은 최고의 구단주를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 팬들에게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은 허상이었던 듯 하다. 팬들과 소통 창구라 여겨졌던 정 부회장의 SNS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간이었을 뿐이다.
정 부회장이 개인적인 공간에서 지극히 하고 싶었던 말들만 늘어놓았던 것을 우리는 소통이라 여겼다.
자신에게 불리한 이야기들이 올라오자 소통의 장으로 포장됐던 개인 공간은 굳게 닫혀버리고 말았다.진심으로 감동하고 위로받았던 소통이라는 단어는 이제 SSG에서 쓸 수 없는 단어가 됐다.
정용진(52) SSG 랜더스 구단주가 SNS를 통해 최근 논란에 대한 심경을 밝혔다.
정용진 구단주는 15일 자신의 SNS 소개글에 ‘여기는 개인적인 공간임. 소통이라고 착각하지 말기를 바람.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편한 포스팅 있으면 댓글로 알려주길 바람’이라는 글을 남겼다. 앞서 글에는 ‘영원히 안 보이게 해드리겠음’이라는 문구가 가장 말미에 적혀 있었던 가운데, 오후 2시 20분 현재는 해당 부분이 삭제된 상태다.
최근 SSG는 류선규 전 단장의 자진 사퇴 이후 김성용 신임 단장이 부임하는 과정에 정 구단주의 측근인 이른바 ‘비선 실세’가 개입했다는 거센 의혹에 휘말렸다.
이에 SSG 팬들은 12일부터 평소 격없이 소통해 왔던 정 구단주의 SNS에 찾아와 댓글을 남기거나 메시지를 보내는 등의 방식으로 해당 사건에 대한 비판 의견을 개진했다.
그러자 13일 정 구단주는 비판 댓글이 달린 게시글을 삭제하고 댓글창도 막아놓는 등 소통 대신 불통을 택했다.
이후에도 SSG 팬들의 여론이 격화되자 결국 정 구단주가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남긴 셈이다.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다. 정 구단주는 ‘개인적인 공간’이며 ‘소통이라고 착각하지 말라’며 자신의 SNS가 그간 대중의 인식과는 달리 소통창구가 아니었다고 밝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최고의 구단주를 가졌다 여겼던 SSG 팬들은 하루아침에 배신당하고 말았다.
지금까해 해 왔던 것은 소통이 아니라 정 부회장의 개인적인 취미와 야구가 맞아 떨어졌을 뿐임이 확인됐다.
SSG 팬들의 자부심이었던 ‘소통’은 원래부터 없었던 것이라는 것만 확인하고 말았다. 어떻게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실망감이 팬들의 가슴에 남았다. SSG 팬들이 가졌던 자부심은 15일 부로 사망 선고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