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유격수’라 불렸던 이학주(33·롯데 자이언츠)가 외도에 나선다. 데뷔 이후 줄곧 자리를 지켰던 유격수가 아닌 2루수와 3루수로 뛰는 이학주의 모습을 올 시즌 자주 보게 될 전망이다.
이학주는 20일 대구 삼성 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2023 KBO리그 시범경기에서 9번타자·2루수로 선발 출격했다.
이학주의 2루수 출전은 정말 보기 드문 광경이다. 2019년 KBO리그에 데뷔한 이후로 줄곧 유격수 자리를 지켰다. 데뷔 시즌 1루수로 3이닝을 수비한 것이 유일한 외도였다. KBO리그 1군 338경기 2436과 3분의 1이닝 동안 유격수로만 뛰었던 그의 2루수 출전은 희귀한 장면이었다.
미국 시절로 범위를 넓혀봐도 이학주의 외도는 드물다. 2015년 미국 탬파베이 레이스의 산하 트리플A 더햄 불스에서 1경기 6이닝을 2루수로 뛰었고, 이듬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산하 트리플A 새크라멘토에서 3루수로 2경기 18이닝을 소화했다. 이외 658경기(5683과 3분의 1이닝)에선 유격수로만 활약했다. 이 활약에 힘입어 이학주는 ‘천재 유격수’라는 타이틀과 함께 2019년 KBO리그에 입성했다.
그랬던 이학주가 프로 데뷔 15년 만에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일본 오키나와에서 치른 스프링캠프 연습경기에서 3루수로 출전한 데 이어, 이날 시범경기에선 2루수로 선발 출전한 것. 천재 유격수가 새 시즌을 앞두고 ‘외도’에 나섰다.래리 서튼 롯데 자이언츠 감독은 이학주의 ‘유틸리티’ 능력을 믿었다. 서튼 감독은 경기 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이학주가 이제껏 유격수에서 주로 뛰었지만, 2루나 3루 수비도 가능한 선수다”라면서 “팀에 있어 ‘슈퍼 유틸리티’의 가치는 어마어마하다. 이학주와 박승욱, 이호연 등이 이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라며 기대했다.
이날 이학주는 감독의 기대에 부응하는 활약을 펼쳤다. 1회 말 자신의 키를 넘길 것 같은 구자욱의 타구를 팔을 쭉 뻗어 잡아냈다. 2회 말 무사 1, 2루 위기에선 왼쪽으로 흘러가는 공을 낚아챈 뒤 몸을 돌려 2루로 송구, 1루 주자를 잡아냈다. 글러브에서 공을 빨리 빼내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 병살을 시도해 귀중한 아웃카운트를 올렸다.
이학주는 8이닝 수비 풀타임을 뛰면서 실책 없이 경기를 마무리했다. ‘천재’라는 수식어답게 다른 포지션에서도 깔끔한 수비 실력을 선보였다.
사실 롯데에서 이학주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었다. 수비 능력이 뛰어나지만 아쉬운 타격과 워크에식(work ethic·성실함)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르며 외면을 받았다. 올 시즌엔 자유계약선수(FA) 노진혁이 합류하면서 입지가 더 좁아졌다. 이에 새 시즌 ‘유틸리티’ 변신으로 활로를 찾았다. 이학주의 외도가 잊혀진 천재의 존재감을 다시 끌어 올릴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한편, 이날 경기는 삼성의 5-2 승리로 끝이 났다. 롯데 전준우가 선제 2점 홈런으로 앞서나갔으나, 1회 말 오재일의 적시타와 2회 말 피렐라의 2타점 적시타가 역전을 이끌었다. 롯데 선발 투수 댄 스트레일리가 2이닝 동안 61구 6피안타 2볼넷 4실점으로 부진했다. 삼성 선발 백정현은 초반 홈런 위기를 딛고 4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며 승리를 책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