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는 뿔났고, 女王은 울었다' PBA 초유의 인터뷰 거부 사태 전말

214 0 0 2023-07-11 07:25:31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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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2024시즌 프로당구(PBA) 2차 투어 '실크로드&안산 PBA-LPBA 챔피언십' 남자부 결승전이 끝난 11일 경기도 안산시 상록수체육관. 10일 밤 10시 시작된 경기가 자정을 조금 넘겨 마무리됐다.

'최강' 프레드릭 쿠드롱(벨기에·웰뱅저축은행)이 팀 동료 비롤 위마즈(튀르키예)를 세트 스코어 4 대 1(15-13 15-3 15-5 13-15 15-11)로 눌렀다. PBA 남녀부 통틀어 최다인 8회 우승의 위업을 이룬 순간이었다.

우승 세리머니와 기념 촬영을 뒤 기자단 인터뷰가 진행될 순서. 먼저 준우승자인 위마즈가 문답을 마치고 이날의 주인공인 쿠드롱의 인터뷰가 이어질 차례였다. 위마즈의 인터뷰가 끝나기를 기다렸던 쿠드롱이 자신의 순서에 맞게 기자 회견실로 들어왔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단상 앞에 섰다.

자신을 스롱 피아비(캄보디아·블루원리조트)의 매니저라고 소개한 그는 제지하는 PBA 관계자들에게 "쿠드롱에게 얘기를 했다"며 발언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다. 미리 양해를 구한 것으로 판단한 관계자들이 물러나자 스롱의 매니저는 입을 열기 시작했고, 그 사이 쿠드롱은 굳은 표정을 지으며 밖으로 나갔다.  

스롱의 매니저는 "스롱이 시상식 기념 촬영 때 쿠드롱에게 다가가려 했는데 쿠드롱이 손짓을 하며 이를 거부했다"고 밝혔다. 스롱은 전날 여자부 우승을 차지했는데 하루 인근 호텔에서 머문 뒤 이날 시상식에 나섰다. 스롱의 매니저는 "나도 같이 사진 촬영을 했는데 나중에 동영상을 확인해보시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스롱이 시상식 뒤 호텔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삼촌, 이럴 수가 있느냐'며 울고불고 했다"면서 "쿠드롱이 당구를 좀 친다고 이러면 안 된다"고 지적했다. 심지어 "PBA에 와서 '물 반 고기 반'인 상황에서 우승을 많이 했다고 그러는 것이냐"며 투어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스롱 역시 여자부 최다인 6회 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대부분 선수들이 30개 대회 이상 출전한 가운데 스롱은 20개 대회 만에 거둔 성과였다.

엉뚱한 상황에 취재진이 "일단은 우승자 인터뷰 순서인데 그런 얘기는 추후 PBA에 하라"고 항의했다. 알고 보니 스롱의 매니저는 쿠드롱에게 발언 기회를 달라고 양해를 구한 것이 아니었고, 그저 스롱에게 왜 그랬는지 따진 것이었다. 결국 스롱 매니저는 회견장에서 쫓겨나듯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PBA 관계자는 "스롱 매니저가 쿠드롱에게 무례한 행동을 했다며 사과하라고 요구했다"고 인터뷰 직전 상황을 전했다. 이에 쿠드롱이 "당신이 뭔데 사과하라, 말라 하느냐"고 맞섰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스롱 매니저가 세게는 아니지만 쿠드롱의 가슴을 손으로 밀었다"고도 했다.

이런 소동 속에 정작 이날의 주인공 쿠드롱은 회견장에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 PBA 고위 관계자들이 쿠드롱을 설득했지만 이미 감정이 상한 뒤였다. 결국 새벽 1시가 넘어서까지 우승자를 기다렸던 취재진은 쿠드롱에게 질문조차 하지 못했고, 당구 팬들도 중계 방송에서 간단히 진행된 쿠드롱의 소감 외에 깊은 얘기를 전해 듣지 못했다.

그런데 시상식 현장에서 함께 사진 촬영을 했던 취재진의 말은 스롱 매니저의 주장과 사뭇 달랐다. 취재진은 "쿠드롱이 스롱에게 거부의 손짓을 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다"면서 "단지 조금 떨어져 있었을 뿐"이라고 입을 모았다. 한 사진 기자는 "둘 사이의 대화도 없었던 것으로 봤다"고 전했다.

해당 매니저는 스롱의 소속팀인 블루원리조트나 매니지먼트 회사와는 무관한 것으로 알려졌다. PBA 관계자는 "소속팀 직원으로 알고 있었는데 선수 개인이 고용한 사진사인 것 같다"고 밝혔다. 

물론 시상식 기념 촬영 당시 쿠드롱과 스롱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 수는 있다. 서로 감정이 좋지 않은 선수들도 분명 있다. 다른 종목에서도 비일비재한 경우다.

하지만 기자 회견은 PBA 투어의 공식적인 행사다. 억울한 부분이 있다면 우승자 회견이 끝난 뒤 PBA에 발언 기회를 정상적으로 얻어 털어놓으면 될 일이다. 자신의 선수가 마음이 상했다고 다른 선수의 영광스러운 자리를 망치는 것은 이기적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반대로 쿠드롱의 매니저가 스롱의 인터뷰를 방해했다면 어쩔 것인가. 더군다나 스롱의 매니저가 주장한 무례한 행위의 진위 여부도 불분명한 상황이다. 이는 선수를 위한 일이 아니라 망치는 섣부른 행동이다.

PBA 고위 관계자는 "해당 매니저가 '스롱은 괜찮다'고 했는데 본인이 화가 나서 호텔로 가다고 돌아왔다고 하더라"면서 "인터뷰 무산 사태를 어떻게 할 거냐고 크게 화를 내며 따졌더니 책임지겠다고 하는데 이미 인터뷰는 무산된 상황인데 뭘 어떻게 책임을 진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창졸지간에 벌어진 일이고, 쿠드롱의 양해를 구했다고 해서 직원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면서 "취재진은 물론 팬들에게도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프로당구 초유이자 다른 스포츠에서도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우승자의 황당한 인터뷰 거부 사태.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PBA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선수에 대한 매니저의 비뚤어진 애정에서 온 돌발 행동이 부른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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