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입대를 앞두고 마음이 복잡한 것은 일반 학생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는 16일 입대를 앞둔 한국프로농구(KBL) 수원 KT 소닉붐 소속 허훈은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누구나 가는 군대인 만큼 부담을 느끼기보다 건강하게 다녀오겠다. 농구 인생은 기니까"라며 특유의 '쿨한' 모습을 보였지만 2021~2022 KGC인삼공사 정관장 프로농구 시즌을 복기할 때의 아쉬움까지 감추지는 못했다.
허훈은 올 시즌 마치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을 보냈다. 시즌 초반 발목 부상으로 결장했지만 복귀한 뒤 정규리그 40경기에서 평균 29분14초를 뛰며 14.9득점, 2.4리바운드, 5.2어시스트로 좋은 활약을 펼쳤고, 친형 허웅(원주 DB 프로미)과 함께 올스타전 인기투표에서 1·2위를 독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규리그 2위 팀 자격으로 오른 플레이오프에서는 KGC인삼공사와의 4강전 마지막 경기에서 허벅지 부상을 당하며 1득점에 그치고 패배하는 아쉬움도 남겼다. 2017년 KBL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데뷔했지만 끝내 우승과는 연을 맺지 못하고 입대하게 된 것이다. 스스로에게 "정규시즌은 부상 빼고는 50점 정도라고 보지만 플레이오프는 빵점"이라고 낙제점을 매긴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미 지난 일에 머물지 않겠다는 자세는 그 자신뿐만 아니라 아버지인 '농구 대통령' 허재와 형 모두 마찬가지다.
시즌을 마친 뒤 짧게나마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는 허훈은 "가족이 함께 있어도 먹고 쉴 뿐 농구 얘기를 잘 꺼내지 않는다"며 "그만큼 농구인으로서 서로 기분을 잘 이해하고 있고 아버지는 아버지, 형은 형대로 각자 인생을 사느라 바쁘다. 군대 가는 것에 대해서도 별말이 없더라"며 웃었다.
허훈은 상무 입대를 농구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새로운 기회로도 보고 있다. 그는 "프로 데뷔 후 스스로에게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을 정도로 열심히 해왔지만 부상이나 팀 성적에서는 모자람도 있다"며 "상무에서 특별히 무언가를 보완한다기보다는 지금 상태에서 조금 더 다듬고, 몸 관리를 잘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허훈은 자신의 메신저 프로필에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좋지만 유지만 하겠다고 생각하겠다. 그렇게 살다 보면 내가 언제 여기까지 올라왔나 생각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는 문구를 올려두고 있기도 하다. "지나친 부담을 느끼기보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우승과 MVP까지 천천히 올라가겠다는 뜻"이라는 설명이 따랐다.
일단 상무에서 뛰는 동안은 이룰 수 없는 꿈이기는 하다. 한동안 소속팀 KT와 프로농구 무대를 떠나는 입장에서 아쉬운 마음이 없지는 않다.
허훈은 "구단과 상의해 입대 시점을 정한 것이다. 내가 없어도 KT가 내년 시즌에 더욱 잘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예전에 비해 많이 떨어진 농구 인기에 대해서는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작년과 올해 훨씬 많은 관중이 왔을 것 같아 아깝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며 운동만 하기보다는 선수들도 적극적으로 농구를 알리는 활동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입대까지 얼마 남지 않은 황금 같은 시간을 쪼개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유도 궁극적으로 농구 인기에 보탬이 되기 위해서다.
평소 장기적 목표를 세우거나 득점과 어시스트 등 숫자를 중시하기보다는 당장 눈앞의 경기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허훈 스타일이지만 상무에서는 특별히 이루고 싶은 목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농구 금메달을 따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개최가 무기한 연기돼 아직 확실한 것은 없지만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하나 딴다면 전역 선물로 그만한 것도 없다.
허훈은 "평소 멀리 목표를 세우기보다 운명에 맡기자는 편이지만 국가대표로서는 나가는 대회마다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 게 당연한 자세이자 책임감이 아닌가"라고 반문하며 "스포츠가 내 생각대로 다 되는 건 아니겠지만 아시안게임에서 뛰게 되면 반드시 메달을, 가능하면 금색으로 목에 걸고 오겠다는 각오가 있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