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야구대표팀 ⓒ 연합뉴스
[스포티비뉴스=도쿄(일본), 김민경 기자] "팬들에게 보답하기 위해서는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
이강철 한국 야구대표팀 감독은 지휘봉을 잡은 순간부터 한국 야구의 흥행을 늘 언급했다. 대회 하나를 준비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일인데, 야구인들과 야구팬들 모두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을 야구 재흥행의 척도로 삼고 있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상상 이상의 압박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23년 WBC' 1라운드 조별리그 B조 호주와 첫 경기는 한국의 부담감이 모두 드러난 경기였다. 한국은 지난 1월 최종 엔트리 발표 순간부터 "호주전 승리"를 외치며 대회를 준비해왔다. 호주만 이기면 8강 토너먼트, 나아가 4강까지 노릴 기회의 문이 열린다고 계산했기 때문. 이 감독을 비롯한 코치진이 직접 호주를 방문해 전력을 분석할 정도로 승리에 목숨을 건 상태였다.
그래서일까. 한국 선수들은 호주 선수들보다 훨씬 얼어 있었다. 타자들은 5회말 1사까지 13타자 연속 범타로 물러나면서 쫓기고 있었다. 그사이 선발투수 고영표가 4회와 5회 1점씩 내줘 0-2로 끌려가면서 더더욱 웃음기를 잃어갔다.
5회말 안방마님 양의지의 역전 3점포가 터졌을 때 비로소 선수들은 웃기 시작했다. 6회말 4번타자 박병호의 1타점 적시 2루타까지 터져 4-2로 달아나면서 선수들은 조금 안심하기 시작한 듯도 했다.
그러나 7회초 김원중, 8회초 양현종이 연달아 3점 홈런을 얻어맞으면서 다시 분위기는 뒤집혔다. 대타 강백호가 7회말 1사 후 2루타를 친 뒤 더그아웃 분위기를 살려보겠다고 크게 세리머니를 하다가 2루 베이스에서 발이 떨어져 태그아웃됐다. 7-8로 뒤진 9회말 선두타자 안타로 출루했던 토미 현수 에드먼은 후속타가 터지지 않으면서 2사 1루가 되자 무리하게 2루를 훔치다 아웃됐다. 호주의 큰 홈런 2방에 한국 선수들이 얼마나 흔들리고 급해졌는지 느껴지는 플레이들이 모두 쏟아져 나왔다.
호주전을 마치고 믹스트존을 빠져 나오는 선수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굳어 있었다. 세리머니 주루사를 당했던 강백호는 모자를 푹 눌러 쓰고 믹스트존을 지나갔고, 3점포 포함 멀티히트로 활약했던 양의지는 "투수들을 제대로 리드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며 경기장을 빠져 나갔다.
한국은 상대적 약체로 평가받던 호주에 쫓길 정도로 위축돼 있는 듯하다. 이 감독은 "최근 전체적인 국제대회 성적이 안 좋았기 때문에 올해 경기는 KBO리그를 위해서도 마찬가지고, 팬들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서는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고 했다. 2020 도쿄올림픽 노메달, 2013년과 2017년 WBC 1라운드 탈락을 염두에 둔 말이었다.
한국 야구 흥행의 사명감이 투지로 이어지면 좋겠지만, 지금 대표팀에는 부담감으로만 작용하는 듯하다. 태극마크의 무게에 짓눌려 나와선 안 될 장면까지 나오고 있다. 호주전 패배를 빨리 잊지 못하면 계속해서 경기가 꼬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 10일 일본과 8강 진출의 운명이 걸린 결전을 치른다. 한국은 좌완 에이스 김광현, 일본은 베테랑 메이저리거 다르빗슈 유를 선발투수로 내세웠다. 객관적 전력상 일본이 한국에 우위인 것은 맞지만, 야구는 끝날 때까지 모르는 일이다. 오히려 일본이 반드시 한국을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을 수도 있다.
이강철호는 KBO리그 흥행을 이끈다는 사명감은 잠시 접어두고, 한 경기 1승만 생각하면서 부담감을 덜어낼 필요가 있다. 한일전도 1라운드 한 경기라는 생각으로 부담 없이 나서야 호주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