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살, 강백호의 오른발과 이용규의 깨진 헬멧[김은진의 다이아몬드+]

203 0 0 2023-03-10 17:56:04 신고
※ 5회 신고 누적시 자동 게시물이 블라인드 처리됩니다. 단 허위 신고시 신고자는 경고 또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정후, 박해민, 강백호가 지난 9일 WBC 조별리그 첫 경기 호주전 패배 뒤 고개를 떨구고 그라운드를 나서고 있다. 도쿄 | 연합뉴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한국 야구의 중흥기를 이끈 대회다. 2006년 1회 대회에서 4강, 2009년 2회 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은 세계 야구의 중심에 섰다. KBO리그도 같이 올라섰다. 아마추어 직행이 아닌 프로야구 출신 선수들이 미국으로, 일본으로 쏟아져나간 것도 WBC가 기점이었다. 선수들의 몸값은 지금까지도 치솟고 있고 한동안은 리그 수준도 수직 상승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멈춘 상승세는 하락세로 돌변했다. ‘진출’과 ‘탈락’ 사이의 결과만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기본’의 퇴보를 드러내고 있다.

제5회 WBC에 출전한 야구 대표팀이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호주에 졌다. 8강 진출을 위해 반드시 이겨야 할 경기를 진 충격은 매우 크다. 훨씬 더 큰 충격의 원인은 그라운드 위 선수들의 모습이다. 패배의 원인은 늘 복합적이다. 그러나 아무리 철저하게 준비해도 나가서 실행하는 선수들의 능력과 자세가 따라주지 못하면 성과를 낼 수 없다.

강백호(24·KT)가 호주전 패배 뒤 온몸으로 지탄을 받고 있다. 4-5로 뒤지던 7회말 1사후 대타로 나서 펜스 앞까지 뻗은 대형 2루타를 쳤지만, 2루 베이스에서 오른발이 떨어진 줄도 모른 채 더그아웃의 동료들을 보며 환호하다 2루수에게 태그아웃되는 황당한 실수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주자가 진루 뒤 인플레이 상황에서 베이스를 지켜야 하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그만큼 간절했던 마음은 이해할만하지만, 경기 중에 감정이 기본기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 결정타를 맞은 투수들과 무기력하게 삼진 당한 타자들을 제치고 강백호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일 것이다.

강백호는 데뷔하면서부터 강렬한 활약으로 짧은 시간에 리그 스타로 자리했다. 1년 선배 이정후가 시즌 뒤 메이저리그로 가면 그 다음으로 KBO리그를 지켜야 할 신세대 대표주자다. 지난 시즌 부상과 부진으로 큰 시련을 겪었지만 한국 야구가 그 이상의 차세대 대표 타자감은 찾지 못할 정도로 재능이 뛰어나다. 그러나 국가대표나 진정한 스타가 갖춰야 할 덕목은 재능에서 그치지 않는다.

강백호뿐 아니다. 한국은 1점 차까지 다시 따라간 8회말, 포수가 홈을 비웠는데도 동점주자 박해민이 3루에서 꼼짝하지 않은 탓에 그대로 물러났다. 접전에서 상황에 집중하지 못하는 선수는 여럿이었다. 형편 없는 패배를 하고선 “결과론”이라고 말한 선수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용규가 2009년 WBC 일본과 결승전에서 2루로 도루하다 유격수 무릎에 부딪혀 헬멧이 부서진 상태에서도 베이스를 손으로 짚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야구가 하락세를 타기 시작한 것은 국가대표 세대교체를 향한 목소리가 나온 시점과 거의 일치한다. 특급 선수들은 해외로 가버렸고, 국내에서 ‘믿을 수 있는’ 선수들을 선발하자니 늘 ‘그 밥에 그 나물’이었기 때문이다. 최정, 양의지, 김현수가 늘 단골로 태극마크를 달고 있고 이번 대회에는 박병호, 김광현, 양현종이 다시 출전했다. 김광현은 결국 14년 만에 다시 WBC 한·일전 선발로까지 나섰다.

이들을 뛰어넘을만큼 믿음직한 선수가 여전히 없다는 뜻이다. 호주전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언제까지 김광현, 양현종이냐” 같은 영혼 없는 푸념을 할 게 아니라, 전성기에 한국 야구 중흥기를 만든 ‘광현종 세대’가 이제 퇴보하기 시작했는데도 수준에 걸맞는 다음 주자가 보이지 않는 시급한 현실을 걱정해야 한다.

2009년 WBC에서는 스타가 많이 탄생했다. ‘열사’도 ‘국민노예’도 모두 그때 나왔다. 그 중 한 명은 이용규였다. 깨진 헬멧으로 패기와 투혼의 상징이 됐다. 이용규는 일본과 결승전에서 2루로 도루, 헤드퍼스트슬라이딩을 하다 유격수 무릎에 부딪혔다. 헬멧이 완전히 깨질 정도로 큰 충격에 얼굴을 다쳤는데도 베이스를 짚은 손이 떨어질까 짚고 다시 짚는 모습이 전국민에게 전해졌다. 승리에 대한 강한 열망과 집중력도 고스란히 같이 전해졌다. 당시 이용규도 만 스물네살이었다.

지더라도 악착같이 정신 차리고 뛰는, ‘젊은’ 패기와 투혼의 야구를 국제대회에서 본 지가 너무 오래 됐다. WBC는 이제 시작됐다. 대표팀이 정신차리고 보여줘야 할 경기가 더 남아 있다. 

▼ 댓글 더보기
※ 로그인 후 이용가능합니다.
0 / 300
번호 제목 작성자 시간
◈ 베픽 파워볼 & 파워사다리 픽등록 연승 이벤트 ◈ 낮지기3
24-10-02 16:24
◈ 베픽 커뮤니티 리뷰 홍보 이벤트 ◈ 낮지기3
24-10-02 16:24
19174
"8년 함께했는데"…클롭, 애제자 보내는 심경 밝혔다 해적
23-03-11 17:14
19173
철저히 외면하더니 공개적 사과…안토니오 콘테 "미안하다" 장사꾼
23-03-11 15:44
19172
포인트저는법돔요 석봉이
23-03-11 15:43
19171
맨유 에이스, 이제 월클 본다! ‘괴물-차세대 황제 이어 세 번째’ 원빈해설위원
23-03-11 14:30
19170
'中보다 아래라니...' 최하위 한국, 그래도 2R 진출 경우의 수 있다 [도쿄 현장] 오타쿠
23-03-11 13:06
19169
[WBC] 고개 숙인 태극전사…이정후마저 분노한 눈빛으로 빠져나가 손나은
23-03-11 12:56
19168
'중국에도 밀린다' 한국, 이대로 탈락?…8강 경우의 수, 어떻게 되나 가습기
23-03-11 11:15
19167
'제 버릇 어디가나' WBC 한일전에 어김없이 등장한 욱일기 극혐
23-03-11 10:11
19166
[serie.review] 김민재 우승 성큼! '2위' 인터밀란, 스페치아에 1-2 충격패...나폴리와 15점 차 물음표
23-03-11 08:58
19165
"이기적인 선수"…히샬리송 '저격'에 콘테의 '일침' 닥터최
23-03-11 07:04
19164
"한 명만 있었어도"… 모리뉴 감독, 이겼는데 'B.뮌헨 타령' 이유는? 6시내고환
23-03-11 05:32
19163
'이번 시즌 35분 출전' 포그바, 지각으로 유로파 명단 제외 뉴스보이
23-03-11 03:38
19162
'득표율 압도적 1위' 황인범, 2월 수페르리가 이달의 선수상 수상 간빠이
23-03-11 02:18
19161
레알, 지단 '강추'에도 '오시멘 영입' 씹었다…"3년 지나 지금 후회" 불도저
23-03-11 00:45
19160
야구 보다가 화병나겠다 노랑색옷사고시퐁
23-03-10 22:39
19159
페리시치 OUT!…포체티노 선임 시 예상 베스트 11 순대국
23-03-10 20:16
19158
"이런 선수가 선발이 아니라고?"…맨유 '전설' 놀라게 한 '신성' FW 원빈해설위원
23-03-10 19:31
VIEW
스물네살, 강백호의 오른발과 이용규의 깨진 헬멧[김은진의 다이아몬드+] 픽샤워
23-03-10 17:56
19156
'턴하흐와 대화하는 김민재'…유럽이 KIM 열풍으로 뜨겁다 픽도리
23-03-10 16:15
19155
[442.exclusive] 계륵이 된 '1200억' FW, 맨유가 고려해야 할 '2가지' 활용 방안 오타쿠
23-03-10 15:37
19154
맨시티-뮌헨에서 애매해진 '월클' 윙백, 바르사가 관심 호랑이
23-03-10 13:57
19153
SON 안타까워...“당연했던 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듯” 호랑이
23-03-10 11:57
19152
"김민재 이적 축하합니다!"…맨유, 바이아웃 '700억' 지불 결정 극혐
23-03-10 10:58
19151
'韓 야구 흥행 사명' 태극마크에 짓눌렸나…즐기는 선수가 없다 미니언즈
23-03-10 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