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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토트넘)은 지난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이라크와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1차전에서 0-0 무승부를 거둔 뒤 “내 몸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은 관리하지 못한 것에 대한 핑계다”라며 조심스러워하면서도 “물론 이틀 만에 잠을 잘자고 경기를 치를 수는 없다. 유럽에서 경기를 뛰고 바로 넘어온 터라 시차면에서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손흥민의 이 말에는 유럽파의 고충이 여실히 묻어나있다. 그리고, 파울루 벤투 감독의 전술적 한계 또한 여실히 드러나있다.
손흥민은 지난달 31일 황의조(보르도), 황희찬(울버햄프턴), 김민재(페네르바체)와 함께 파주 국가대표팀트레이닝센터(NFC)에 입소했다. 그리고 50시간이 채 안돼 이라크전에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뛰었다. 손흥민 뿐만 아니라 황의조, 김민재도 풀타임을 소화했고 오직 황희찬만이 후반에 교체투입됐다.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은 A매치 때마다 먼거리를 이동한다. 대다수가 손흥민처럼 소속팀에서 경기를 뛰고 바로 넘어온다. 그래서 늘 체력은 물론이고 시차 적응에 애를 먹는다. 소속팀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도 정작 대표팀에서는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시차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유럽에서 뛰는 선수들에겐 어쩔 수 없는 숙명이다. 그렇다면 경기 운영 측면에서 체력 안배라도 필요한데, 벤투 감독의 전술은 그것을 허용치 않는다.
4-2-3-1 포메이션을 주로 쓰는 벤투 감독은 빌드업을 중시한다. 특히 공격 작업에서는 거의 대부분 측면에서 풀어나가길 선호한다. 그렇다보니 양쪽 측면 공격수와 풀백이 전술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벤투 감독이 늘 풀백을 두고 고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풀백과 함께 측면 공격수는 유럽 최정상급 리그에서 뛰는 손흥민과 황희찬이 거의 고정이다. 풀백은 아직 주전을 확정지을 수 없어서 고민이라면, 측면 공격수는 이들을 대체할 자원이 없다. 황희찬을 대신해 이라크전에 선발 출전했던 송민규(전북)는 별다른 활약을 하지 못했다. 측면에 비중을 크게 두다보니 손흥민이 쉬고 싶어도 쉴 수가 없다. 실제로 손흥민은 이라크전 막판 체력이 방전돼 힘들어하는 모습이 잡히기도 했다.
너무 측면을 고집하다보니 상대는 대처하기 쉽다. 이라크는 한국을 상대로 측면을 집중봉쇄해 크로스의 질을 떨어뜨리며 한국의 공격을 원활치 못하게 했다. 이럴 경우 다른 공격루트도 뚫어야 하는데, 지금까지 3년을 대표팀 감독으로 있었으면서도 벤투 감독은 확실한 ‘플랜 B’를 내놓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최전방에 있는 황의조는 늘 고립됐다. 불행히도, 황의조는 손흥민 이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선수가 없다. 만약 골이 터졌다면 이들의 체력 안배도 당연히 이루어졌을 것인데 그렇지 못해 끝까지 체력을 소모해야 했다.
김대길 스포츠경향 해설위원은 “측면 의존도에 대한 부분은 오래전부터 지적된 문제다. 다양한 공격옵션이 필요한데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다”며 “유럽에서 오는 선수들에겐 긴 비행시간, 시차 적응 등의 문제로 한국에서 하는 경기가 진정한 의미의 홈경기라고 할 수는 없다. 이제 다른 팀들도 이라크가 그랬듯이 전반전은 버티고 후반전에 역습을 통한 결정적인 찬스를 만들려고 할텐데, 우리는 유럽파 선수들을 다 뺄 수는 없으니 더욱 전술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