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쩌다 고춧가루가 됐지?”
두산 김태형 감독이 쓴웃음을 지었다. 53승72패2무, 9위로 후반기 시작과 함께 5강서 완전히 밀려났다. 2014년 이후 8년만에 포스트시즌 탈락이 눈 앞이다. 이미 2014시즌 68패를 넘어 70패를 넘어섰다. 두산 프랜차이즈 최저승률 및 가장 나쁜 순위로 시즌을 마칠 가능성이 있다.
두산왕조의 몰락은 예견됐다. 1~2년 전에 일어났어야 할 일이 김태형 감독의 빼어난 지도력, 희미하게 남아있던 왕조 시절 DNA 발동으로 늦춰졌을 뿐이라는 게 대다수의 시각이다. 거듭된 FA 유출로 타선이 지속적으로 약화됐다. 그보다 급이 낮은 뉴 페이스들 중에선 핵심으로 성장한 선수가 나오지 않았다.
7년 연속 그 어느 팀보다 중요한 경기를 많이 치르면서 기존 주축들의 몸 상태도 많이 악화됐다. 나이를 많이 먹고 자연스럽게 기량 저하가 찾아온 선수들도 있다. 여기에 믿었던 아리엘 미란다의 부상과 퇴단을 비롯해 FA 타자들의 부진까지 겹치며 경기력이 뚝 떨어졌다.
결국 내년에는 뉴 페이스들의 기량을 끌어올리고, 더 발굴하고, 외국인선수들을 더 잘 뽑아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삼성왕조도 2015년을 끝으로 저문 뒤 아직도 확실하게 다시 치고 올라오지 못한 걸 보면, 두산도 긴 호흡으로 새 판을 짜야 할 수도 있다. 김태형 감독의 계약만료도 중대한 변수다.
오히려 최근 경기력이 괜찮다. 18일 인천 SSG전서 경기후반 난타전 끝에 졌지만, 지난주 선두다툼을 펼치는 SSG와 LG를 상대로 각각 1승1패로 선전했다. 이를 두고 김 감독은 쓴웃음을 지으며 “우리가 어쩌다 고춧가루가 됐지”라고 했다.최근 두산 선수들의 움직임을 보면 경쾌해 보인다. 선두수성의 압박을 극심하게 받는 SSG가 오히려 더욱 초조해 보였다. 어차피 포스트시즌 진출이 안 되는 걸 아는 선수들이 편안하게 경기에 임하면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시즌 막판 하위권 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프로스포츠에선 ‘고춧가루 부대’라고 말한다.
이런 현실이 부임 후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올라간 감독 입장에선 낯설 뿐 아니라 ‘웃픈’ 상황이다. 어쨌든 김 감독으로선 잔여 17경기를 최대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며 마치는데 포커스를 맞춰야 한다. 큰 의미 없는 것 같아도 김 감독 생각은 다르다.
“내년까지 이 분위기를 어떻게 끌고 가느냐가 중요하다. 경기력과 분위기를 좋게 끝내서 내년에 들어가는 것과 안 좋은 상태로 끝나는 건 다르다”라고 했다. 좋은 흐름을 가을 마무리훈련으로 이어가면서 내년을 기약하는 게 중요하다.
다만, 김 감독이 두산의 가을 마무리훈련을 이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한번 웃으며 “그건 묻지 마라. 나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라고 했다. 이 말도 맞는 말이다. 김 감독은 잔여 17경기를 지휘하면 두산과의 계약이 만료된다.